카프리에는 타일로 만든 그림 문패가 많다.'우리집에는 멋진 곡선으로 된 수영장이 있어요'라고 써놓은것보다 더 확실하게 정원 한가운데 있는 수영장을 그려 놓은 것도 있고,건축가는 제도기와 연필이 필요하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컴퍼스니 스케일자니 하는 제도 용품들이 그려져 있는 타일 문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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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간 있으세요? 따뜻한 공간에서 커피나 한잔하며 적성 검사 하실 생각 없으세요? 공짠데..'
귀가 번쩍 뜨여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는 원래 성격테스트니 그림 퀴즈. 심지어는 손금이나 관상까지 보기 좋아하는, 남편 말로는 '테스트 받기를 좋아하는 인간'이고,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전 근대적인 인간형'이다. 남편은 따라가면서도 궁시렁 궁시렁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체 여기까지 와서 왜 이래야 하는거야?'
하지만 공짜 커피에 적성검사 까지 해준다니 나는 귀가 솔깃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들어가니 200문제 정도의 테스트 용지를 건네 주고는 커피를 따라 주었다.
'20분 정도면 되겠죠? '예, 아니오'로만 표시하면 돼요.'
생각보다 문제가 복잡해졌다. 200문제를 20분안에 풀라니, 그것도 영어문제인데...
'참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것도 슈바빙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좀 봐라. 어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있나. 다 약간씩 덜 떨어져 보이잖아. 여긴 그렇고 그런 사람만 오는게 분명해'
남편은 문제를 풀면서도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왕 저지른 일이고. 또 이미 들어왔으니 문제라도 제대로 풀어 결과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뭐 문제는 대충 이랬다. 책을 읽을 때 음악을 틀어 놓는가? 길을 가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돈을 주는가? 음식을 먹으면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가?
남편은 하다보니 그래도 재미가 들었는지 꽤 진지하게 풀어나갔고, 결과는 약 5분 후에 컴퓨터의 프린터기를 통해 나왔다.
'이우일 씨. 먼저 들어오세요.'
우린 시간 핑계로 같이 들어갈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개인적인 문제라며 프라이버시를 요구했다. 하지만 부부라는 사실을 우기고 또 우겨 서로의 동의하에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상담자는 남편의 결과 용지를 든 채 식은땀을 닦았다. 무언가 초초하고 민망해 보이는 표정으로...
' 저.. 사회 생활은 잘 하시나요?'
남편의 결과는 아주 뻔하게 공상을 많이 하고, 단발적이며, 욱하는 성질이 있는 상당히 비사회적인 인간형으로 나왔다. 이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도 상담자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안정을 요구했다.
'서울에 산다고 했죠? 그럼 이곳에 가보세요. 서울에도 우리 기관이 있으니까요.'
물론 난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살수 있는 인간형으로 나왔다. 남편의 결과 용지 덕분에 그만만 해도 난 아주 괜찮은, 아무 문제 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린 하얀 컴퓨터 용지 하나씩을 손에 들고 다시 슈바빙으로 나왔다.
'거봐. 괜히 기분만 나빠졌잖아. 뭐?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라고?'
역시 독일은 나에게나 꼭 어울리는 곳이라는 느낌이 재차 들었다. 아침부터 나의 덜렁댐에 치여 남편은 이것 저것을 챙겨주고, 거리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을 달려오면서까지 고스란히 가져다 주고, 공짜 커피에 적성검사까지! 난 뮌헨이 점점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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