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변화관측지〉 1호는 반려의 상승을 다루었다. 2019년 1월의 일이다. 그때 가장 많이 증가하던 것은 ‘반려식물’이었다. 이제 반려식물은 일반화되었다. 코로나 이후 오늘날 가장 큰 폭의 상승을 보이는 것은 ‘반려기기’다. 특히 많이 언급되는 것이 오디오 기기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쉼 없이 플레이되는 무선이어폰, 케이스도 내 방식으로 꾸미고, 오로지 내 것으로 존재한다. 무선이어폰이 없으면 집을 나설 수 없다. 심지어 선풍기도 선에서 해방되고 디자인이 예뻐지면서 반려기기로 진화했다. 로봇과 연관해서도 서빙로봇에 이어 반려로봇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혼자, 오래 살 것을 기대하는 인간은 ‘애착’의 대상을 찾는다. 애착의 대상이 동물, 식물에 이어 사물로 확장되고 있다. 전자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충분히 반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것’이 되어야 한다.
---「프롤로그」중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 현실 사이의 갭이 발생한다. 이를 메우는 방식이 트렌드로 발현된다. 다시 말해 로망과 현실의 갭을 메우는 것, 그것이 각광받는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즉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로망/기대치를 알아야 하고, 무엇이 그것을 방해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다리를 잇는 것으로서 트렌드 현상을 이해한다면 매일매일 쏟아지는 신조어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우리 시대의 경향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예는 아침 식사의 변화다. 2020년 3월, 그래놀라 언급량이 시리얼을 역전했다. 2020년 코로나로 아침을 챙겨 먹는 상황이 늘어나며 시리얼과 그래놀라에 대한 관심이 함께 증가했는데, 그중 그래놀라의 상승세가 더 가팔랐다.
---「1장 ‘이 시대의 가치 : 효율·성취, 간편·건강, 자아·독립’」중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벅스와 넷플릭스에 대한 로망성이 희석되긴 했지만, 빡빡한 직장인의 현실과 당당한 커리어인 사이의 갭을 메워줄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망은 미국식 라이프보다는 서울 라이프에 있다. 오래된 것과 미래적인 것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서울에서 치열한 직장인의 긴장을 조이는 혹은 늦추는 상징물로 무엇이 있을까? 장소라면 서울의 로컬리티를 안고 있는 곳, 콘텐츠라면 더 마니악할수록 차세대 스타벅스와 넷플릭스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1장 ‘이 시대의 가치 : 효율·성취, 간편·건강, 자아·독립’」중에서
정신건강이 이렇게까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시그널은, 이를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의 멘탈이나 정신적 문제를 객관화하려는 노력에 더해 병리적 문제임을 인지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소셜미디어에서도 정신과에 대한 언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신과에 간다고 언급하는 것자체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우리 사회의 오랜 금기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2장 ‘우리는 모두 금쪽이다’」중에서
‘청년’이 언급될 때의 연관어를 뉴스와 소셜미디어로 나누어 비교해보았다. 소셜미디어에서 청년은 ‘지원금’, ‘적금’, ‘대출’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위한 제도와 더불어 ‘대학생’, ‘꿈’, ‘관심’, ‘20대’ 등 일상에 관한 단어가 나타난다. 반면 앞서 청년이 정책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뉴스에서 청년은 ‘공약’, ‘선거’ 등 정치권의 키워드가 연관되며, 단지 어떠한 특징을 가진 ‘유권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MZ세대가 마케팅의 대상으로 이해되는 타자적 존재였다면, 청년은 정치적으로 불리는 타자적 존재인 것이다. 청년은 가진 건 없어야 하지만 희망과 열정은 있어야 하는, 동정과 응원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3장 ‘MZ, 이제 그만’」중에서
‘1인’에는 스스로를 챙기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철저한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1인으로서 자신의 몫을 해내려는 사람이다. 특히 사회초년생들의 태도를 ‘1인분을 해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1인분’은 게임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으나 현실이 게임에 비유되곤 하는 흐름을 타고 e스포츠에서 스포츠 전반으로, 일로, 나아가 인생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게임에서처럼 사회생활은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고, 팀은 같은 목표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자 맡은 바를 잘해내야 하므로 1인분을 하지 못하면 안 된다. 조별과제에서 무임승차가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팀 사회에서도 묻어가면 안 된다. 1인분을 수행하는 개인들의 공정함이 보장된다면, 설령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1인분은 했다고 인정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못해도 1인분은 하자’라든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인분만큼만 하자’는 태도가 많은 사회초년생의 디폴트 값이 되었다. 즉 ‘1인분’은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뜻하며, 그 역할을 다했을 경우 받는 보상을 함의한다.
---「3장 ‘MZ, 이제 그만’」중에서
‘자낳괴’와 ‘갓생’ 사이를 왕복하는 젊은 세대는 자기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현실관계와 (잠재적이더라도)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경험을 바란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기억하자. ‘나를 둘러싼 현실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돈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돈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4장 ‘자본주의 키즈의 감감감’」중에서
팬덤 문화에는 이처럼 주체들의 뒤섞임이 있다. 누가 이 문화의 화자이고, 누가 청자인가? 누가 발화했고, 누가 수용했는가? 아이돌 멤버인가, 생일카페 주최자인가, 생일카페에 방문하는 팬덤들인가? 구분이 불가능하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이 팬덤 문화 속에 화자와 청자, 발화자와 수용자가 뒤섞인다. 생각해보면 본디 문화란 위도 아래도, 내부와 외부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향유하는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시간의 축적이 문화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들의 경제감각 또한 다르지 않다. 아이돌과 팬덤의 주인공 자리가 뒤섞이는 것처럼, 경제주체와 소비주체의 경계도 흐릿해지고 있다. 생일카페 현상은 앞으로 사회적 관계 형성과 소비문화에 이러한 팬덤 콘텐츠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임을 보여준다.
---「4장 ‘자본주의 키즈의 감감감’」중에서
띠부띠부씰부터 NFT까지, 사소한 나의 기록물을 비롯한 아카이브가 자산가치로 변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는 환금성(換金性)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특히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는 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어떤 플랫폼에서든 경제체제를 찾고 만든다. 당장은 큰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아카이브를 통해 공개하고, 이것이 언젠가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이들은 아카이브에 자산가치가 생기는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몇천 원짜리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가 몇만 원이 되기도 하고, 10만 원 안팎의 운동화가 몇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심지어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무명의 청소년이 NFT 아티스트가 되어 자신의 작품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록은 흡사 숨 쉬듯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차세대 소비자들은 기록에서 멈추지 않고, 아카이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축적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5장 ‘환금성(換金性)의 시대, 자산이 되는 아카이브’」중에서
결제수단은 소비의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 소비는 묘한 것이다. ‘싸다’, ‘싸지 않다’, ‘비싸다’, ‘비싸지 않다’의 뉘앙스가 다 다르다. 이를 구분해보면 이러하다. 절댓값은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얻은 것에 비하면 비싸지 않은 ‘동경의 소비’가 있고, 소비하면서도 싸다, 비싸다는 가격 평가보다는 행복하다, 편안하다 등 자신의 감정 상태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소비’가 있는가 하면, 쓰는 금액은 1만~2만 원 정도로 많지 않은데도 ‘알고 보면 싸지 않다’, ‘비싸다’ 심지어 ‘아깝다’고 표현되는 ‘필요의 소비’가 있다. 결제수단과 관련된 업이라면 이 중 어떤 소비를 잡을지 결정해야 하고, 브랜드 매니저라면 내 브랜드가 어떤 소비에 속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6장 ‘동경의 소비, 사랑의 소비, 필요의 소비’」중에서
4인가구가 다수이고 소비의 기준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4인가구 중심의 소비가 제안되었다. 4인용 식탁, 4인용 자동차, 4인분이 들어 있는 식품 등. 독립가구가 소비의 기준이 되면 1인이 소비의 기본단위가 된다. 이미 인구통계학적 분류로 다인가구에 속하는 사람들도 더 많은 시간을 ‘1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재택근무 시간, 퇴근 후 자기계발 시간, 주말의 성수동 나들이는 독립된 경제주체의 소비패턴과 일치한다. 1인가구는 이미 소비 트렌드 리더이자 가치소비의 리더다.
---「6장 ‘동경의 소비, 사랑의 소비, 필요의 소비’」중에서
디바이스 소비의 트렌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개인화, 다양화, 세분화다. 다같이 공유하던 디바이스가 개인의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한 사람이 소유하는 디바이스의 종류가 많아지며, 같은 디바이스 안에서 목적에 따라 전문화된 세부 기기를 갖춘다. 여기에 코로나로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의 삶이 디바이스 사용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행 중이던 변화를 더욱 빠르게 와닿게 했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종식된다고 해도,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변화는 앞으로 더 진화할 뿐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나의 개인 태블릿이 되면 그것을 다시 가족과 공유하려는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사용이 뜸해진다 해도 언제까지나 나만의 태블릿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화된 기기는 개인의 ‘애착’ 디바이스로 점점 강화될 것이다.
---「7장 ‘기계, 반려와 애착의 대상이 되다’」중에서
구독 유형에서 관찰되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이 자신이 구독하는 무형의 콘텐츠들을 ‘소유’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무형의 콘텐츠 구독은 소유가 아니라 열람할 수 있는 권한만이고, 심지어 그 권한도 금액을 지불하는 기간에 한정된다. 즉 무엇 하나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게 없으며, 우리가 아는 소유의 개념과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확실한 소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구독을 하는 중에는 언제 어디서든 기기만 있으면 마음대로 시청, 감상, 이용할 수 있으니 소유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오늘날의 소유감이란 그 물건을 손에 쥐고 있는 감각이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순간에 언제든 꺼내 마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에 좀 더 가깝다. 소유의 개념이 이렇게 변화한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 욕심 내는 것도 가능하다. 창작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오늘날에는 책이나 LP, 비디오를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플랫폼 구독을 통하면 가능하다. 적어도 소유감을 느끼는 건 가능하다.
---「8장 ‘구독,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소유하는 방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