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처럼 인터뷰를 생업으로 삼지 않아도 ‘듣기’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이다. 강의 듣기, 이야기 듣기, 하소연 듣기, 자랑 듣기, 흘려듣기, 열심히 듣기, 억지로 듣기 등 듣는 법도 다양하다. 분명 같은 이야기를 같은 장소에서 들었는데 함께 있던 사람과 기억을 대조해보면 서로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 내가 당시에 그리던 유능한 인터뷰어는 상대방의 말문이 막힐 만큼 예리한 질문을 가차 없이 날리면서도 끝까지 냉정을 유지한 채 멋지게 반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건 내게 무리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납득했다. 인터뷰는 가차 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방식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훌륭한 자질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들어주는데 무슨 이야기든 못 하겠어!’라는 느낌을 전달하며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 회사에서 상사나 부하와 대화할 때, 퇴근 후 술집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때, 거래처 담당자를 설득할 때, 집에서 가족의 고민을 들을 때, 아내의 수다 상대가 될 때, 자식의 속마음이 궁금할 때, 친구를 사귈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이웃을 만났을 때, 엄마끼리 모임을 가질 때 등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인터뷰하거나 당해야 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누구든 ‘인터뷰’로 시작해서 ‘인터뷰’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오랫동안 해 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인터뷰에 나설 때마다 두렵다.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엄살을 피운다며 코웃음을 치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기를 바란다. 인터뷰 대상도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나왔는데 질문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이야기할 맛이 나지 않는다. 대화가 무르익도록 분위기를 조성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 상대의 기분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무엇을 근거로 상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 이때 ‘나’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방법은 나름 효과적이다.
* ‘다 안다’라고 반응하면 상대는 이야기할 맛을 잃는다. 특히 ‘진심 어린 말’로 구원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섣부른 위로에서 담긴 거짓된 마음이 금방 들통난다. 그 결과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의심만 사게 된다.
* 만약 우리가 연주나 연기, 요리에서 항상 일정한 최고의 품질을 바란다면 컴퓨터나 로봇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기교의 차이가 주는 매력도 있지만 그 이전에 변화하는 인간의 본질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 나도 가끔 인터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전에 ‘오늘의 주제’를 알려오면 만나기 전에 얘깃거리를 준비한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인터뷰어의 유도에 따라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나도 잊고 있었던 상황이나 사건이 일깨워지면 마치 보물을 발견한 양 기쁘다.
* 어쩌면 한 번 샛길로 빠진 이야기를 되돌리려 애써도 노력만큼 성과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내 경험상 이야기 중심을 놓치지 않고 상대를 유도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 인터뷰어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인터뷰 참가자다. 게스트는 주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즐겨주면 신날 수밖에 없다. 내가 게스트였을 때도 당연히 그랬다. 카메라맨뿐만 아니라 보조 카메라맨까지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 나는 웬만해서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지만 인터뷰 일만큼은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진다.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동료들에게 질책당하기 싫은 소심한 마음이 크다. 물론 도중에 포기할 뻔한 적이 있다. 아니, 포기한 것과 같다.
* 인터뷰 전, 자료를 읽어두는 두 번째 목적은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다. 자료는 본인의 인터뷰 기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나 스캔들 기사도 포함된다. 다양한 관점에서 취합한 자료를 토대로 대중의 시선은 어떤지도 생각해 본다.
* 사람은 저마다 상대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다르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보는 얼굴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의외의 얼굴’을 발견하면 충격을 받는다.
* 맞장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하.”, “이런.”, “음….” 등의 가벼운 장단에서부터 상대의 말에 공감한다는 의미로 “네에.”, “그렇군요.” 등의 깊이 있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허물없는 사이라면 “그렇군요.”가 아니라 “맞아. 맞아.”처럼 친근한 표현이 좋다. 실제 대화에서는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지만 잡지에 실릴 때는 똑같은 맞장구가 반복되면 아무래도 지루한 감을 준다. 그 점을 감안해 원고를 고치기도 한다.
* 인터뷰의 주인공은 당연히 게스트이다. 그래서 인터뷰어의 옷차림은 되도록 수수한 편이 좋다. 대담 코너를 시작했을 무렵에 나는 그렇게 단단히 믿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피해 검은색이나 흰색, 감색, 회색 등 모노톤으로 골라 입고 디자인도 무난한 정장이나 재킷을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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