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주위를 둘러봤다. 임신 관련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산처럼 배가 부른 아내도 눈에 들어왔다. 재빠르게 책들의 제목을 읽었다. 언뜻 봐도 모두 임산부를 위한 책이었고, 남편을 위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곧 내가 읽을 만한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차례와 내용을 훑어보면서 놀란 사실은 남편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들을 쓴 전문가들은 남편의 역할이 마치 정자를 난자로 보내는 것뿐인 양 얘기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 소중한 임신 기간을 꾸려가는 데 있어 남편의 역할이 겨우 그 정도뿐이라고?
그제야 나는 내가 찾고 있는 책이 남편이 쓴, 남편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은 임신과 출산에 이어 큰 상관이 없다는 식의 책 말고, 남편으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아내의 정신적·육체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궁극적으로는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되도록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 p.5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여자는 자그마한 비밀이라도 서로 들어주느라 밤을 지새우거나, 심지어는 주말 내내 친구네 집에서 위로해주기도 한다.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어느덧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 억눌렸던 기분이 표출된다. 남자는 해답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여자는 그냥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남자는 설혹 자기 속을 털어놓다가도 친구들에게 사과한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어서 미안해.”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일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는데…….”
--- p.31-32
아내의 엉덩이가 아직도 탱탱하다고 거짓말하라. 둘째를 가졌을 때 아내에게 이 거짓말을 많이 했다. 아내는 종종 “내 엉덩이가 축 처진 것 같지 않아?”라고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진짜?”
“그래.”
“하나도?”
“전혀.”
“이상하네, 처진 느낌이 드는데 말이야.”
한번은 세 살 된 첫애가 엄마와 목욕하는 중에 일을 그르칠 뻔했다.
“엄마, 엉덩이가 하나 더 생겼어!”
아내는 “안 처졌다며?”라며 나를 째려봤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쟤는 TV에 나오는 모델하고 비교한 거지!”
“웃기네!”
“진짜야……”
이 거짓말에 대해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말라. 아내는 당신의 진심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어쨌든 아내의 엉덩이는 조만간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 p.61-62
어느 순간 당신의 아내는 거울 앞에서 시선을 가슴에 고정시킨 채, 손으로 크기를 재보고 있을 것이다. 아내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아마 당신은 “당신 생각에는?”이라고 되묻게 될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테니까.
만일 아내가 항상 가슴이 조금 더 컸으면 하고 바라왔다면 신나서 춤이라도 춰야 정상이겠지만, 불행한 사실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은 절대로, 커진 가슴 때문에 더 흥분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당신의 성기가 일시적으로 조금 커졌는데, 아내가 그래서 섹스가 더 황홀했다고 말하면 당신 기분은 어떻겠는가? 그렇다고 아내가 “뭐 괜찮긴 한데, 원래 크기였을 때가 더 좋았어.”라고 말한다면?
--- p.83
나는 양수천자 검사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알게 된 건 아내가 언젠가 지나가는 얘기로 말해준 뒤였다.
“뭘 어떻게 한다고?”
아내에게 물었다.
“배 속으로 바늘을 넣는다고? 아기 근처로?”
이 검사는 내 보호 본능을 극도로 달궈놓았지만 아내는 그저 “의사가 자세히 설명해줄 거야.”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속으로 나는 ‘그 잘난, 냉정하고 모르는 게 없는 의사가 이 무식하고 안달 난, 게다가 의사를 믿지 않는 남편에게 잘도 설명해주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로부터 지나치게 직설적인 설명을 들은 후 나는 첫째, 자연과 과학 앞에서 나 자신이 무용지물임을 깨달았고 둘째, 스스로 영웅 노릇을 포기했고(나부터가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데 무슨 영웅이 되어 아내를 구해내겠는가?) 셋째, 무서웠고(결과가 좋기만을 바라면서) 넷째, 의사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졌다. 사실 이 모든 일은 한순간에 받아들이기에 벅찼고, 내 몸은 필요한 액션을 취했다.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어지러움을 느낀 나는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어야겠어.”라고 말했다. 나만의 상상일지 모르지만 순간적으로 의사가 음흉한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와 대기실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임신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이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남자들은 약골이라니까!”
--- p.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