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 만화는 단번에 박흥용 만화임을 웅변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그 이야기 안에서 작가의 사유를 담아내는 방식이 그렇다. 전통적인 서사 전개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하다가 내면의 사유를 슬쩍 내비치거나,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거나,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를 뒤섞어 버리지만 결코 낯설지 않고 그 모두가 하나의 선에 존재한다. 이 선은 외로운 외줄처럼 보이지만, 가만 보면 땅 위에 그어진 선이다. 그래서 사방의 이야기가 작은 선으로 모아지고, 작가는 모아진 선의 이야기를 태연스레 전달한다.
박흥용의 만화를 읽다보면, 칸과 말을 동원한 말장난이 곧잘 등장한다. <구르믈버서난달처럼>에서 황정학과 견자가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나 <호두나무 왼쪽 길로>에서 삼천포를 찾은 낚시꾼 두 명이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가 그것이다(2권 p93). 그야말로 농담처럼 건네지는 시퀀스인데, 상대방을 웃겨야 한다는 중압감에 가득찬 장면들보다 오히려 헛헛한 웃음을 자아내는 이 농담 시퀀스-칸도, 대화도, 표현도-는 박흥용 다움을 느끼게 하는 여백의 연출이다. 서사의 줄타기가 아득한 공중이 아니라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러나 그 땅 위의 한 줄이 어느 순간 까마득한 벼랑처럼 느껴지는 것, 때론 대로처럼 넓어지고, 그래서 갖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오는 것, 바로 이것이 박흥용 만화의 서사(敍事)다.
데뷔 초기 한국만화에서 보기 드문 표현주의 만화를 보여주는데 주력한 박흥용은 <구르믈버서난달처럼> <경복궁 학교> <내 파란 세이버> <그의 나라>를 통해 일관된 하나의 서사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박인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