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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3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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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3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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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26g | 127*188*18mm
ISBN13 9788983928177
ISBN10 898392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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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좀 서줄래요…
민석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부호표를 찾아서 세 개의 점을 찍어 보내곤 했다. 문자나 메일에서 보이는 세 개의 온점은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오히려 부드러움으로 바꿔주는 스위치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엔 온점 하나에 그의 망설임, 혼란, 그리고 불안이 읽힌다.
--- p.9

-꼭 진실이 중요한 걸까요. 카잘스의 그런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바흐한테도 잘된 일 아닐까요. 덕분에 바흐는 최고의 첼로 솔로곡을 작곡한 사람으로 남게 됐으니까요. 모두에게 좋다면 진실이 꼭 진실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더구나 카잘스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게 아니라면 도덕적으로도 걸릴 게 없는 거고요.
--- p.29

주연 또한 교수라는 허상을 향해 달려왔지만 동물들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치열한 캠퍼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대통령이나 과학자처럼 꿈일 뿐인 꿈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꿈을 꾸는데도 이루기 갑갑한 게 현실이었다.
--- p.50

주연은 점점이 떨어지는 눈을 보며 [빌바오, 3월의 눈]을 떠올렸다. 노르웨이의 작곡가가 말년에 몸이 안 좋아 요양차 머물고 있던 스페인의 시골마을 빌바오에서 작곡한 가곡이었다. 그는 고국의 눈을 그리워하며 스페인 시골 마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그 곡을 작곡했다. 빌바오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 작곡가에게 3월의 눈은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불가능성은 삶일 수도, 사랑일 수도, 예술일 수도 있었다.
--- pp.69-70

민석에 대한 질투 때문인가, 아니면 주연이 가지지 못한 음악적 재능을 연두가 가져서인가, 둘 다일 것이다. 확실한 건 연두가 패배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연두가 주저앉아 울고 있다면 진심으로 토닥여주고 연민할 수 있다. 그러나 주연이 사랑하는 남자나, 이십 년 이상을 바쳐온 음악에 연두가 더 뛰어나다면 진심으로 박수 쳐줄 수 없다.
--- pp.108-109

비겁하다. 비열하다. 졸렬하다. 한심하다. 괴물이다. 언니처럼 조용히 자신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민석과 연두를 파멸시킬 것인가.
질투의 본질은 비합리, 비논리성이다. 원인과 결과가 합치하는 과학보다는 종교에 가깝다. 그래서 질투의 협로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도, 학식의 고저도, 나이의 다소와도 상관없이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이다.
--- pp.271-272

주연이 연두와 민석에게 한 행동은 질투가 아니었다. 시기심이었다. 질투가 삼자관계에서 대상에 대한 사랑을 근거로 한다면 시기심은 오로지 파멸만을 목적으로 한다. 질투가 고상하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하다면 시기심은 오직 비열하기만 하다.
--- p.284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를 위해서도 울지 않은 그녀였다. 기영의 어린아이 같은 맹목의 사랑에 그녀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녀가 기영에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윤리적으로 꺼림칙하거나 자기애 때문이 아니다. 사랑 따위의 말로도 끼어들 수 없는, 기영의 깊은 인간에 대한 공감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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