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는 끝나는 데 있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사랑의 의미는 끝나지 않는 데 있다.
--- p.20
사랑이 문화적 비유나 화학적 속임수 이상의 진짜 감정이라면 무의미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시인들은 옳다.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느낌,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 p.30
한 소년이 파티에 간다. 소년은 군중 속에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를 보자 첫눈에 반한다. 소년은 열정을 다해 소녀에게 다가간다. 지금 당신이 겪었다면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를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고 시를 읊는다. 소녀도 맞잡은 손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마음을 전한다. 떠나기 전에 소년은 소녀에게 몸을 기울여, 입맞춤한다. 소년의 이름은 로미오, 소녀의 이름은 줄리엣. 이것은 지금껏 ‘사랑’ 하면 누구나 손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1590년대 초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이후, 이 엇갈린 운명의 커플은 사랑에 빠진 연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격렬한 감정에 견주었다. 처음 본 예쁜 여자에게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 로미오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저게 바로 사랑인 거겠지? 우연한 만남은 사랑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미래 배우자의 첫 느낌에 따라 결혼생활이 결정될 거라고 생각한다.
--- p.75~76
1838년 7월, 찰스 다윈이 종이 뒷면에 결혼에 관해서 끼적거린 글이 있다. 그는 종이를 반으로 나눠 양쪽에 ‘결혼’과 ‘독신’의 장점을 적어 내려갔다(맨 꼭대기에는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썼다). ‘결혼’ 목록은 간단했다. 다윈은 아이를 낳을 가능성(‘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사랑이 주는 건강상의 이점,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특전, 한결같은 동반자(나이 들면 친구 같은)를 얻는 기쁨을 언급했다. 그는 “어쨌거나 아내가 개보다는 낫겠지.”라고 적었다. ‘독신’ 목록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비글(Beagle) 호를 타고 5년간 세계 일주를 다녀온 이후로 다윈은 자유에 익숙해졌다. 그는 속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따라서 독신으로 사는 이점으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를 적었다. 그 외에도 저녁 시간에 독서 가능, 불안과 책임이 덜함, 더 일반적으로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족쇄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살 수 있음을 포함시켰다. 결혼에 대한 대차 대조표 뒷장에는 그의 진실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었다. --- p.129~130
왜 기억과 사랑은 그토록 얽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기억이 불안정하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회상할 때마다 기억은 변형된다.
--- p.191
사랑은 끝났을 때조차 여전히 흔적을 남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에게 화가 날 수도, 그녀에게 질투가 날 수도 있지만, 그 또는 그녀가 지루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변하지만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옛 애인에 대한 관심이 계속될 것이다. 페이스북으로 그를 훔쳐보거나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할 것이다. 그가 꿈속에 계속 나타날 것이다. 길거리에서 그를 마주치거나, 동창회에서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는 그녀를 본다면 눈길을 돌리거나 무관심한 척할 수 없을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릴 것이다.
--- p.225
사랑은 첫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 p.255
사랑의 미스터리는 삶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늠할 수 없는 힘에 매여서, 부정할 수 없는 욕망에 이끌린다. 사랑에 반대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의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내 인생의 모든 사람들을 둘러볼 때 그들이 내 마음속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 p.268
짧은 교제 후 레오는 소냐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성적인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편지를 시작했다. 그는 불면증, 가족에 대한 불만, 작품에 대한 찬사에 대해 몇 줄 끄적거리다 본론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애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서두르지 말고 말해주세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서두르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정직한 여성으로서 말해주세요……. 내 아내가 되고 싶습니까?” 소냐는 매우 기뻐하며 “네!”라고 답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와 좌절이 행복한 사랑을 방해했다. 레오와 소냐는 강박적으로 일기를 썼다. 그들은 매우 자세하게 감정의 변화를 적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알아보는 게 가능하다.
어떤 도입부는 애정이 넘친다. 소냐는 하루 종일 글을 쓴 후 레오를 보는 설렘을 “그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늘 행복에 겨워 토할 것 같다.”라고 묘사했다. 늦게까지 깨어 촛불을 켠 채 레오가 흘려 쓴 문장을 밤새 베껴 썼을 때의 기쁨도 적었다.
--- p.222~223
생애 처음으로 나는 많은 시인들이 노래하고, 많은 사상가들이 궁극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다. 나는 시와 사상과 마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아주 짧은 순간이라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가 오히려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살아갈 힘이 된다 했던가. 프랭클은 결국 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따라서 죽지 않았다. 그 덕에 우리는 그의 회고록을 읽고 있다.
그리고 프랭클은 남은 인생을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했던 힘을 연구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그 지옥 같은 시간들을 버텨낸 자신의 ‘인내심’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아내와 부모님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연구했다. 어떻게 사랑이 그에게 참을 수 있는 힘을 주었는지 알아내려 했다.
--- p.232~233
삶이 힘들어 내면이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랑이 있어 견딜 수 있다는 게 베일런트 주장의 핵심이다. 마라톤에서 뛰거나 기초 훈련을 끝내는 것처럼 사랑을 지속시키는 데도 잘 만든 근육과 튼튼한 척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인간관계에 필요한 끈기를 발달시킬까? 무엇 때문에 헌신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역설적이게도 순환 논리를 따른다. “우리는 사랑을 받음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존 왓슨과 지지자들은 사랑이 우리를 무르고 나약하고 버릇없게 만든다고 믿었지만, 정반대였다. 애정을 경험해보지 못하면,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갖지 못하거나 상대를 위해 헌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랑을 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이 닿으면 모든 것이 바뀌고 다시 연결된다. 어쨌든 우리가 참고 견디는 게 이 때문이다.
--- p.25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