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오기쿠보, 니시오기쿠보
사람은 참으로 간사해서 누군가 내게 간섭하는 건 싫으면서도 적당히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옆에 있기를 바라게 마련인가 보다. 나도 그랬다. 혼자이고 싶어 떠나온 곳이었는데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타인의 온기가 그리웠다. 그럴 때마다 모이를 찾았다. 서툰 일본어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본문 26쪽, 한 통의 편지가 이어준 운명적 만남 ‘모이’
내가 원두를 줄곧 사다 마신 곳은 오기쿠보에 위치한 브라운 칩이다. 이곳은 카페가 아니라 원두만을 판매하는 곳으로 보통의 로스트 하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가 수많은 로스트 하우스를 두고 언제나 이곳 원두만 사다 마신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본문 40쪽, 고소함, ‘브라운 칩’
도쿄 JR 츄오센을 타고 가다 니시오기쿠보를 알리는 방송이 울리면 특별한 목적이 없더라도 아니, 여행의 목적 따윈 잠시 잊어버리고 옹기종기 작은 가게들이 퍼즐처럼 모여 있는 니시오기쿠보에 내려보자. 남들이 모두 가는 똑같은 여행지에서 벗어나 샛길로 들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본문 50쪽, 예술가들의 새로운 아지트 ‘니시오기쿠보’
그밖에도 3월의 양에는 양을 소재로 한 다양한 빵들이 쇼케이스 안에 제각각 개성 있는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특히 양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하얀 양 빵은 이곳의 인기 메뉴. 양 빵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덥석 먹어버리기 미안해지지만 양 빵은 그런 마음조차 알아차린 듯 괜찮다며 도리질을 친다. 그러면 손엔 양 빵의 하얀 가루가 소복이 쌓인다. ―본문 54~55쪽, 양을 좇는 그녀 ‘3월의 양’
2장. 나카노
나카노 역에서 겨우 5분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가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뭔가 보물이라도 찾아낸 것마냥 흐뭇하기도 했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마스터가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를 조심스레 들고 왔다. 나는 자리에 앉아 ‘우나 카메라 리베라’의 의미를 물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탈리아어로 ‘빈 방’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매일매일 메뉴가 바뀌듯 카페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본문 65쪽, 같은 장소, 6개의 카페, 6명의 주인 ‘우나 카메라 리베라’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가 건네준 명함에 적힌 ‘작은 무국적 요리점, 카르마’라는 문구다. 가만히 보니 정말 메뉴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만나고, 유럽과 일본이 맞닿은 정체불명의 요리들이 국적과 경계를 뒤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국적이라! 재밌어요.” 라고 말하는 내게 마루야마 상은 “무국적 요리는 어떻게 보면 일본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지.”라고 대답한다. 과연! ―본문 74쪽, 무국적 요리점 ‘카르마’
3장. 후타고타마가와
피스는 자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다. 피스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일년 중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의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일년 365일 쉬는 날이 손에 꼽히는 한국의 카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독특한 운영 방침은 아마도 피스가 추구하는 ‘자연과 함께 하는 식사’라는 기본 성격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무래도 한겨울에 찬바람 맞아가며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본문 80쪽, 아주 이상한 평화, 안녕 ‘피스’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이 셰프가 직접 커다란 잔을 들고 나와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계속 따르겠다는 셰프의 농담에 절대 그만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응수하자 목소리만큼이나 굵은 셰프의 웃음 소리가 루나틱을 울렸다. 커다란 잔은 붉은 와인으로 가득 채워졌다. 와인은 씁쓸하기도 했고, 달콤하기도 했다. ―본문 90쪽, 환상에 빠지다 ‘토키오 플라지 루나틱’
4장. 세타가야, 산겐자야
복잡한 신주쿠를 벗어나 산겐자야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노랗고 파랗고 빨간 알록달록 전차로 갈아탔다. 전차는 흔들흔들 세타가야를 향해 달리고, 귀여운 전차가 ‘쇼인진자마에’에 닿았을 때 우리는 그곳의 상점가로 들어섰다. 너무 평범한 상점가라 이런 곳에도 카페가 있을까 싶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하얀 나무 벽의 작은 건물 한 채가 귀엽게 자리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곳은 북유럽 어느 작은 시골 마을, 털양말 속 소녀의 집, 카페 로타다. ―본문 95쪽, 빨간 털양말 속 소녀 ‘로타’
‘팬케이크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 같지만, 보이보이 팬케이크는 퍼석하지도, 너무 쫄깃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딱 좋은’ 식감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보이보이에서는 팬케이크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본 메뉴가 가장 인기다. ―본문 102쪽, 마마의 팬케이크 ‘보이보이’
5장. 시모기타자와
서울의 대학로와 홍대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의 시모기타자와는 10대와 20대의 젊은 혈기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젊음의 거리로 대표되는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등 도쿄 중심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때묻지 않은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아직도 적지 않은 극단과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한 이곳은 문득 배고픈 예술가들의 쓸쓸한 뒷모습 같은 얼굴을 할 때가 있다. ―본문 113쪽, 달콤함 ‘치쿠테 카페’
‘따뜻하게 구워진’이라는 아주 특별한 ‘단서’ 때문에 치쿠테의 딸기 파이는 테이크 아웃이 불가능하다. 오직 카페 안에서만 먹을 수 있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딸기 파이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맛이 난다. 곁들여 나오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따뜻함과 차가움이 입 안에서 뒤섞이며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본문 120쪽, 달콤함 ‘치쿠테 카페’
일본의 여느 카페들이 핸드 드립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반면 미케네코샤는 프렌치 프레스를 사용한다. 커피 오일까지 여과 없이 담겨 나오는 프렌치 프레스의 거칠고 부드러운 맛은 공간과 시간이 뒤엉킨 맛의 미로다. ―본문 128쪽, 미로 찾기 ‘미케네코샤’
6장. 교도
태풍이 말끔하게 지나간 그날, 친구와 함께 찾아간 로바로바에는 수공예품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벽과 천장에 온통 전시물이 매달려 있는 가운데 덩그러니 놓은 작은 테이블과 흔들의자에 자리잡은 우리는 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고 한참 작품 감상에 빠졌다. 고개를 들거나 몸을 틀어 작품을 바라볼 때면 의자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본문 147쪽, 흔들흔들 나귀를 타고 ‘로바로바 카페’
카페 쿠라에서는 직접 구운 빵과 신선한 야채, 수프를 기본으로 한 세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들 메뉴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중에서도 직접 구운 흰 빵과 담백한 단호박 수프는 먹어도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또한 쿠라 입구의 부엌을 따라 길게 이어진 복도에는 장식장 가득 수제 잼과 직접 구운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과일이며 초콜릿 등 아낌없이 들어간 재료가 한눈에 보이는 먹음직스런 머핀과 케이크의 유혹을 참아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본문 156쪽, 강아지 니코와 즐기는 브런치 ‘카페 쿠라’
7장. 이치가야, 이다바시, 오모테산도
아오키 상을 비롯한 호안 스태프들의 미소에는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지금도 처음 호안을 찾아가 아오키 상과 인사를 나눌 때 얼굴 가득 번져 있던 그녀의 웃음이 잊혀지질 않는다. 오오나미 상의 말처럼 아오키 상은 정말 ‘스테키나 조세이(멋진 여성)’다. ―본문 171쪽, 초록색 방의 얼음 빠진 팥빙수 ‘호안’
마치 스파이들이 비밀 장소로 가기 위해 몸을 숨기듯 틈새 길로 접어들면 그 좁은 길에 거짓말처럼 생선구이 선술집이 삐죽 자리하고 있고, 생선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운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다바시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약속 시간보다 조금 서둘러 가서 카구라자카의 골목 골목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면 골목은 사람들이 스쳐간 흔적과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문 180쪽 ‘이치가야와 이다바시’
사카무라의 커피는 네르 드립으로 내린다. 칼리타식 혹은 코노식처럼 깔때기 모양의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천으로 된 드리퍼를 이용해 내리는 방식이다. 종이 필터로 내렸을 때보다 원두 불순물이 천천히 걸러지게 되므로 맛이 좀더 부드럽고 진하다. 날씨가 굉장히 추운 데다 축축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야채 수프와 진한 커피가 더욱 맛있게 느껴졌던 것일까. ―본문 188쪽, 무뚝뚝하지만 달콤한 커피 ‘사카무라’
8장. 가마쿠라
가마쿠라로 향하는 코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에노시마’다. 이 작은 섬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산 위의 신사와 구불구불 좁고 오래된 길, 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요트 선착장 등 작은 섬 전체가 관광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 197쪽, 살아 있는 섬 ‘에노시마’
디망쉬를 운영하는 호리우치 상은 디망쉬의 동글동글 노란 달걀 옷을 입은 오므라이스처럼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정말 동글동글 웃는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그이지만, 미소에서는 어린 소년의 풋풋함이 묻어나 실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호리우치 상이 운영하는 잡화점 ‘도이스’ 스태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일하고 있는 4년 동안 한 번도 호리우치 상이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워낙에 타고나길 낙천적이고 온화한 성격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미소에서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행복한 기운이 느껴진다. ―본문 205쪽, 브라질의 열정 ‘비브멍 디망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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