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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 창비시선 229
중고도서

도화 아래 잠들다 - 창비시선 229

김선우 | 창비 | 2003년 10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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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1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6422295
ISBN10 893642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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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이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리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pp.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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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문득 길의 몸을 본 것 같다. 더듬거리며 그 몸을 찾아나설 때가 다시 오고 있음을 안다. 더 멀리 가야 한다. 더 큰 고통과 축복의 몸들에게로. 여전히 내 언어는 불화의 쪽에 있지만, 내 속에서 오래도록 나를 불러온 허방으로 두려움없이 가야겠다. 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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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김선우의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는 여성적 글쓰기의 긍정적 차이와 해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전범이다. 그녀의 텍스트를 이루고 있는 맛있는 모국어와 무의식이 질주하는 치렁치렁한 환유의 시 문법은 남성 시인의 직선적 상상력과 발성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성적 글쓰기의 긍정적 차이와 흘러넘치는 환상(環狀)선의 욕망을 보여주는 기표들의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육체와 대자연의 쾌락, 성욕 등이 무한한 욕망으로 겹쳐지면서, 이 대자연-상상계적 여성 육체는 그리하여 아버지-근대-로고스중심주의를 넘어서서 탈근대라는 새로운 담론의 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민둥산'이나 '69-삼신할미가 노는 방'이 보여주는 우주적 에로티시즘, '완경(完經)'이나 '물로 빚어진 사람'이 보여주는 엄마-딸의 생리적 연대와 사랑, 여성의 '여성다운' 육체와 생리를 대자연의 성욕에 천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열락(jouissance)의 상상력. 이러한 특징은 김선우적 여성 텍스트가 모유와 음문(陰門), 유방과 아주 능동적인 클리토리스로서의 풍요로운 글쓰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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