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는 모두를 사랑했고, 모두가 케이를 사랑했다. 케이는 언제나 호의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햇살 아래에서 케이가 웃을 때마다 교실 분위기가 정돈되었다. 뭐랄까, 케이는 학생들 사이의 온도 차를 줄이고 학급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해냈다.
--- p.24
“그렇다면, 미야미네, 나의 히어로가 되어줄래?”
케이가 이렇게 말한 순간, 나의 남은 생은 시작되었다. 이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어린 마음에도 확신했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모습의 나라도, 미야미네가 날 지켜줄래?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어?”
“…응, 약속할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케이를 지킬게. 네 편이 될 거야.”
--- p.36
‘나비 도감’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블로그에는 사람의 손을 찍은 사진만이 담담하게 올라와 있었다. 사진에는 흐린 배경에 손목까지만 나와 있을 뿐이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손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만한 사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손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왜냐하면, 그 손 주인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 p.45
“이제 됐어, 미야미네. 괜찮을 거야.”
케이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게 맡겨.”
‘대체 무엇을?’이라고는 묻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얼룩덜룩해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모르면서도 케이에게 그 말을 듣자 무척 안심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도, 엄마의 말도 와닿지 않았는데 케이의 말은 내게 와서 닿았다.
“내가 미야미네를 지킬게.”
--- p.63~64
“사람을… 죽이고, 그런데도, 어떻게, 아무렇지 않아?”
“…그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니까.”
--- p.127
나는 케이를 상처로부터 지키고, 세상의 불합리에서 구하는 그런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케이의 살인을 긍정하는 일뿐이었다.
--- p.148
어리석은 소망이었지만 나는 언젠가 블루모르포가 자연스럽게 쇠퇴하기를 빌었다. 케이가 부리는 마법이 완전히 사라지고, 블루모르포라는 꿈에서 깨어나 케이가 홀가분하게 블루모르포를 내려놓고 여행 가는 날이 오는 게 달콤한 내 꿈의 전부였다.
--- p.184
케이, 죽고 나서 만난 세계는 어때? 이제 아프거나 어둡지는 않아?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는 너만을 생각해. 나는 블루모르포의 성역을 끝내 믿지 못했어. 케이도 그랬겠지. 너는 어디까지나 그 스토리를 만든 사람이니까.
--- p.296
너도 지옥에 떨어질 테니까. 꼭 다시 거기에서 만나자. 나는 구제 불능에다가 너무나 약해서 네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너의 히어로이고 싶으니까.
--- 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