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부동산 개혁은, ‘부동산 불평등은 개혁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인식 위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내 집의 가격은 올라야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환상에 젖어 있는 한, 부동산 불평등은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할 것입니다. 결국엔 망국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되겠지요. 수많은 시민의 고통을 실어 나르면서요.
--- 「서문」 중에서
사실 ‘땅이 없다’는 말은 참 이상합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부동산(不動産)인데, 지진이 나거나 화산이 터진 것도 아닌데 땅이 없다뇨? 조선의 관료들은 수백 년 동안 토지 부족 현상을 지적하며 입을 모아 땅이 없다고 외쳤지만, 땅은 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땅에 이미 주인이 있었을 뿐이죠. 공신이라서, 사대부라서, 관료의 아내라서, 그 후손이라서 가지게 된 땅이 처음 설계한 국가의 재정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해버렸음에도, 아무도 조선의 설계자들이 세웠던 대원칙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완전 해체를 통한 완전 재분배’였음은 다시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고요.
--- 「특권 계급, 토지 사유화를 시작하다」 중에서
오늘날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곳에 큰손들이 따라붙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휼청이 투자한 사업이니만큼 서울의 큰손들도 관심을 가졌죠. 이들은 개발정보 및 등록 관련 지침을 일찌감치 파악한 후, 광범위한 땅에 대한 개발권을 따냅니다. 그러고는 개발권을 빌미로 타인에게 땅을 팔았습니다. 심지어 개간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그 땅을 개간하기를 기다렸다가 수확물의 절반을 ‘삥뜯기’까지 합니다. 4대강이나 행정수도 이전 사업 때 유력 지역마다 미리 땅을 샀다던 ‘서울 땅 부자’의 모습이나 ‘떴다방’, 핫한 개발 지역의 부동산마다 알을 박아두는 사람들, 혹은 허위로 농지를 취득한 후 쪼개어 판매하는 행위가 떠오르죠?
--- 「그 많던 땅은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땅값은 참 골치 아픕니다. 멀리서 보면 땅값이 오르고 내릴 때의 이익과 손해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르면 그 이익이 주로 부자에게 가고, 내리면 그 손해가 주로 서민에게 갑니다. 그래서 조선은 물가와 땅값이 요동칠 때마다 큰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폭넓게 보장해주는 사회보장제도, 환곡을 대규모로 운영하죠. 하지만 환곡이 복지제도의 성격을 잃어가면서, 땅값이 요동칠 때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 「그 많던 땅은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물론 규제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규제가 나타난 배경에는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문화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시 말해, 하나의 규제는 변증법적인 역사의 필연적 결과물입니다. 언론의 십자포화는 규제 자체에 집중되고 그 규제가 만들어진 배경, 즉 사회적 문제와 그 해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거나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규제를 단순히 악마화하는 비판은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규제만으로는 주거난이라는 큰 문제를 바로잡기에 부족합니다. 규제에는 반드시 의도와 다른 효과가 나타납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를 ‘풍선 효과’로 설명하며 변명하죠. 하지만 합리적인 입안자라면,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날 부작용들을 함께 고려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규제한다면 결국 ‘선의로 포장한 면피’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 「주택 부족이 만들어낸 조선의 복덕방 풍경」 중에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역대급 흉작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 출몰하는 이양선과 세도 정권이 주도하는 답 없는 정치 상황, 뒤숭숭한 민심과 국가 재정 고갈 등 수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부동산에 투자합니다. 토지와 주택의 가치가 주목받은 거죠. ‘집값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이 그들에게도 있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안전 자산’으로서의 기대가 충분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 「조선 후기의 집값, 거래문서로 훔쳐보기」 중에서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어쩌면 토지 국유화라는 이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우리 시대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고안된 것들 중 상당수가 토지 공개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이론적 토대입니다. 조선 시대 왕토사상에 의한 토지 국유화와는 개념이 다소 다르지만, 사유재산에 대한 공적 제재를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목표는 같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이상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단 한 번도 토지 국유화에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정이 토지 국유화라는 이념에 입각해 시장을 견제하려 할 때마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고 정교한 이해 관계자의 반대를 맞닥뜨렸거든요.
조정은 주택 문제에 안일한 대처로 일관했습니다. 여러 규제 정책으로 사람들을 압박했으나, 시장이 형성되고 커지는 흐름을 세세하게 살피지는 못했죠. 특히 대규모 공급 정책이 절실했음에도 수도 한양은 한 치도 늘어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따금 행정구역을 개편하거나 빈터를 공공임대하는 정도의 정책만 펼쳤습니다. 단 한 번, 화성 신도시를 건설하고 행정수도를 이전하여 그 흐름을 뒤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 기회는 봄날의 꿈처럼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조정은 한양의 주거난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조선 전기 이어진 불법건축물 문제는 왕실의 권위와 치안 문제로부터 촉발되었습니다.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정책은 국방력 강화 정책의 일환이었죠. 고위 공직자에 대한 다주택 금지는 부패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이었습니다. 즉 주택정책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주거난 해소’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기술 혁신은 꿈만 같았던 ‘탈노동 사회[post-work society]’를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노동한 만큼 소유하고, 소유한 만큼 세금을 낸다’는 보편적 가치, 즉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세상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술 혁신의 질주에서 탈락하는 사람들 역시 시민이자 우리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의 성취도 공허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의 지주들은 몰랐습니다. 훗날 자신 또한 취약계층이 되어 누군가에게 착취당할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 또한 종종 잊곤 합니다. 우리가 성취에 취하여 공동체의 불평등을 외면하는 순간,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절망의 구렁텅이에 우리가 빠질 수도 있음을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부동산 개혁은 평등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라, 공정이 우리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할 것입니다.
--- 「다시 여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