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밥 먹는 모습을 참 오래도록 바라봤다. 너무 오래 함께하다 보니 시간이 늙어가는 걸 몰랐나 보다. 내 앞에는 이제 염색하지 않으면 하얀 백발밖에 없는 노인이,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얼굴에 맞아 나이가 드신 노인이,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지고 살아 축 처진 작은 어깨를 가진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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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반겨 줄 사람도 없고, 밥을 차려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혼자 살아가야 한다니 많이 외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서울 땅이기에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존재는 부재를 통해 그 가치를 알게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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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나서 알았다. 아빠도, 엄마도 연약한 한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들 또한 이번 생이 처음이라는 것을. 아빠도 아빠라는 역할이, 엄마도 엄마라는 역할이 처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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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산 덕분인지 여유가 생겨 지금의 나는 꽤 비싼 음식을 자주 먹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엄마의 맛은 맛볼 수가 없다. 내게 익숙한 그 맛, 내게 편안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엄마가 차려준, 엄마의 손길이 들어간, 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음식은 어디에서도 먹을 수가 없다. 그 맛이, 그 순간이, 그 사랑이 너무 그립다.
--- p.131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시대이다. 늘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중 한 번쯤은 가족과 여행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언젠가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 하더라도, 그 언젠가는 살면서 다시 없을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시간을 돌리려고 애써도, 돌릴 수 없는 순간이 오니까. 가족과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나 지금뿐이다.
--- p.210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가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인생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미안할 일 덜 만들고, 고마운 만큼 나도 고마운 일 많이 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인생, 살아보면 사실 별거 없으니까.
--- p.222
그때 생각했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사람은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그 순간을 함께 해 주는 사람이구나.’ 무채색으로 가득한 내 세상에 그날 처음으로 따뜻한 빨간색과 노란색이 입혀 졌다.
--- 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