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조 알레그리는 메네기니가 보관하고 있던 문서 가운데에서 1960년대 초에 마리아가 영어로 쓴 글을 찾아냈다. 이 글은 이 격변의 시기를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그토록 활기차고 매력 넘치는 오나시스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던 그날, 나는 나아닌 다른 여자가 된 듯했다. 나이가 많은 남자와 살다보니 너무 일찍 기력을 읽고 늙어버린 것 같다.
메네기니와 함께 윤택한 생활을 누려왔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오로지 우리의 돈과 지위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드디어 행복을 아는 평범한 여자가 되었다.
마치 자신의노래가 오로지 명예와 돈에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마리아가 이 글에서 예술에 대한 걱정은 일체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그녀는 마침내 오나시스에게서 자신의 젊음과 기쁨, 특히 그녀가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열정적인 사릉을 발견했다. 새로운 여인은 그녀에게 백마 탄 왕자와도 같은 일종의 영웅으로 비쳐졌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미로운 오페라 속의 등장인물과 닮아보였다.
---pp. 224-225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바람은 공연이 있는 날이면 저녁마다 쉼 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더욱 큰 주압감으로다가왔으며, 그녀 자신을 비인간적이고 독단적이며 고집스럽게 만드는 깊은 번민에 시달리게 했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노래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의 자세도 만들어주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의 욕망은 밑 빠진 독과 같았다. 벨칸토의 본고장에서 성공을 거둔 첫해, 숨가쁜 리듬으로 이곳저곳에서 이어진 이허설과 공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으며 정반대로 더욱 분발하고자 하는 욕망과 열정을 불태울 뿐이었다.
이탈리아 전역의 오페라 극장들은 이내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만을 위해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영예의 월계관을 거둬들이는 동안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바람처럼 지나가, 점차 티타와의 러브스토리는 노래의 열정 속에 녹아 사라져버렸다. 티타는 그저 아버지나 보호자처럼 그녀의 곁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습관처럼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노래만 하면 되었다. 오래는 그녀의 영혼과 육신의 양식이자 즐거움의 원천이었으며, 요컨대 그녀는 오래를 통해 존재했다. 무대 예술의 패러독스는, 예술가는 관객의 사랑에 위안을 얻고 풍요로운 창조력에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지만 이와 동시에 그와 살아가도록 해주는 이 예술에 완전히 빠져들어 아예 그 안에 파묻혀 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마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범한 일상에서 빠져나와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혹은 무대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노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격렬하고 뜨거운 열정을 지나쳐 이젠 강박관념 혹은 열병이 되어버렸다.
---pp.102-103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결코 아름답기만 한 미성은 아니었으며 성역을 이동할 때면 특유의 갈라지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반역의 목소리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가수의 목소리는 특정 상황에 정확히 부합할 때 아름답다.”고 지적하면서 “칼라스의 목소리는 배역에 정직하고 충실했으며, 그러므로 지금껏 들어본 목소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칼라스의 가치와 재능을 일찍부터 간파한 스승인 엘비라 데 이달고는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그야말로 폭포수 같은 소리였죠. 하지만 그런 원석(原石)을 공들여 다듬는다면, 또 그녀가 지닌 독특하고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존재를 알도록 일깨워준다면, 정말 기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p. 10(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