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게 누군가, 친구. 정말 오랜만일세.”
예전에 왔을 때는 틱틱거리더니, 전과 달리 환대하는 걸 보면 뭔가 속셈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렇게 반갑다고 하는 놈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냐?”
“뭐야! 연락을 안 하기는 누가 안했다는 거야? 10년 전에 내가 보낸 마법통신을 씹은 건 네놈이었잖아!”
브로마네스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아르티어스는 찔끔 해서는 급히 사과했다.
“어, 그, 그랬나? 내가 그동안 좀 피곤해서…….”
아르티어스의 말에 브로마네스는 단번에 그 사정을 눈치 챘다.
“아항~, 자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르티어스는 순순히 실토했다.
“그렇다네. 그러니 자네가 이해해 주게, 친구. 내가 그동안 좀 바빴나? 마음 같아서는 한 100년쯤 퍼자고 싶었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거라네.”
“어쨌거나 한숨 푹 잤다니 다행이군. 자, 들어가자구. 너한테 보여줄 것도 있고 말이야.”
브로마네스가 아르티어스를 끌고 간 곳은 높이 8미터 정도로 제작된 거대한 자신의 동상 앞이었다. 동상을 올려다보는 브로마네스의 얼굴은 흐뭇함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어때, 대단하지?”
“대단하긴 하네. 제법 잘 만들었어.”
대답은 시큰둥하게 했지만, 마음은 정반대였다. 드래곤인 이상 아르티어스 역시 금은보석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동상을 바라보는 아르티어스는 너무나도 배가 아팠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새하얀 상아로 뼈대를 만들고, 금과 은으로 몸통을 붙인 다음, 각종 보석으로 끝마무리를 해놨다. 문제는 브로마네스는 이걸 자신의 동상이라고 만든 모양인데, 전혀 레드 드래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몸통에 붙인 금이 불빛에 번쩍거리는 것이 꼭 골드 드래곤처럼 보였다. 그리고 새하얀 상아와 은으로 인해 실버 드래곤처럼 보이기도 했다.
‘젠장, 이건 개발에 편자야. 이런 돌대가리의 레어에 놔두는 것보다는, 내 레어를 장식하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릴 텐데…….’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런 얘기를 꺼내 브로마네스의 기분에 초를 치지는 않았다. 아쉬워서 찾아온 것은 그였으니까.
연신 동상에 대한 자랑을 하면서도 ‘배 아프지’ 하는 표정으로 아르티어스를 곁눈질하던 브로마네스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데리고 있는 드워프 좀 빌려줄까? 너는 필요할 때마다 주변에 있는 드워프놈들을 잡아다가 일을 시킨다며? 그래서는 안 돼. 놈들이 제대로 실력을 갖추도록 훈련도 시키고, 또 협박도 하면서 공을 들여야 하는 거야. 그래야 자기들이 알아서 째깍째깍 예술작품도 만들어 바치고…….”
아르티어스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상대의 말을 막았다.
“됐어. 나는 현재로도 충분히 만족해.”
“이봐. 네가 그렇게 어정쩡하게 대하니까, 그놈들이 성심성의껏 일하지 않고 대충 시간만 때우고 마는 거란 말이야. 한두 놈 잡아다가 확실하게 맛을 보여 놓으면…….”
“아아, 그건 됐어. 안 그래도 할 일도 많은데, 하찮은 드워프 따위에게 신경 쓸 시간 없어.”
화려한 보물을 싫어하는 드래곤은 없다. 그런데 이런 강한 부정이라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브로마네스는 의심스럽다는 듯 아르티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간이 없다고? 너 혹시…, 아직도 그 호비트를 살리려고 뛰어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이미 끝난 일이야. 실은 그거…….”
브로마네스는 아르티어스의 말을 오해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핫핫, 이제야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그래, 축하한다. 보내줄 놈은 보내줘야지. 좋아! 이런 기쁜 날에 술을 한잔 안 할 수가 없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