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리 특강에 참석한 교육생이었다. 교육을 받고 그녀는 내가 알려준 대로 매일 타이머를 맞추고 집 정리를 했다. 몸살감기가 3일째 되는 날이 최대 고비였지만, 15분이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하루는 사용하지 않고 잡동사니만 쌓여 있던 화장대를 정리했다. 아이가 처음 본 결혼사진도 나와서 한참 동안 함께 그 사진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참 오랫동안 그 자리에 방치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정리된 모든 공간이 좋았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공간은 아이방 책상이었다.
언제 어디서 주워왔는지 알 수 없는 돌멩이부터 온갖 잡동사니들의 무덤이었던, 여기서 어떻게 책가방을 싸는지 미스터리했던 책상이 깔끔하게 정리되자 비행기 활주로가 생각이 날 정도였다. 더 놀라웠던 것은 정리를 마치고 나니, 평소 책상에는 앉지 않던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학습지를 푸는 것이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은 그녀는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운 마음에 친구들 단톡방에 ‘책상 정리했더니 아이가 공부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공유했다. 그랬더니 몇몇 엄마들은 단숨에 책상정리를 마쳤고, 오래지 않아 자신의 집에서도 ‘정리의 기적’이 나타났다며,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사진들을 릴레이로 올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공부 좀 해’ ‘숙제 했니’라는 잔소리에는 시큰둥하던 아이가 방 정리, 책상 정리를 했더니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았다는 사실에 모두 열광하는 분위기였다. 엄마의 열 마디 말보다 정리라는 한 번의 행동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 p.22
그렇다면 아이들이 몰입을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몰입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공부와 관련 없는 불필요한 요소를 정리하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재미와 흥미는 고차원적인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것들이 주변에 보인다면 몰입으로 가는 과정이 깨지게 된다. 그래서 컨설턴트들이 공부방을 정리할 때는 오픈된 수납보다는 붙박이장처럼 가리는 수납을 해준다. 예를 들어, 게임기나 컴퓨터를 방 안에 세팅해놓는 것보다 게임기는 바구니에 넣고, 컴퓨터는 노트북을 사용해서 붙박이장에 정리해놓은 뒤 허용된 시간에 꺼내서 사용하고 다시 정리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시간 정리를 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불필요한 일들을 줄이고, 스스로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 부족한 부분을 효과적인 공부법으로 메워야 한다. 왜냐하면 몰입을 하려면 ‘자신의 실력’보다 약간 어려운 도전적인 과제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진도나 문제풀이와 관련 없이 자유롭게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p.34
한번은 정리력 카페에서 집 안 정리가 안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아이들이 어질러서’였다. 교육생이나 정리 컨설팅 고객들을 만나면 대부분 아이 때문에 정리가 안 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사례를 돌이켜보면 아이가 정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정리된 공간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정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은 진짜 맞는 말이다.
부모는 일상생활의 역할 모델이 되기에 아이는 그 부모의 생활 모습을 닮게 되어 있다. ‘저렇게 하는 것이 삶의 방식인가보다’ 하면서 말이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부모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정리는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마법’이나 ‘기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우리 아이가 어지를 줄만 알고 정리할 줄은 모른다면 생각해보자. 나는 정리를 잘할까?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정리하고 있지는 않을까? 부모가 정리를 안 한다면 아이가 정리를 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정리를 잘하라고 나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 p.60
종종 오프라인 모임이나 교육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내 책을 통해 정리를 배우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얘기를 한다.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천의 최용헌 선생님의 사례다.
그는 10년간 교편을 잡으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사물함과 책상서랍, 책가방이 ‘정리가 잘되어 있지 않다’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정리를 잘 못하는 학생이 있긴 했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한결같이 정리정돈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것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하던 어느 날 《하루 15분 정리의 힘》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정리를 제대로 가르쳐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먼저 교과서에서 정리를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5, 6학년 실과 교과서에 2페이지 분량이 있었지만 분량도 적고 내용도 매우 실망스러웠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려면 올바른 정리정돈 방법과 청소 방법을 알고 실천하여야 합니다”라고 시작된 내용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했다. (중략)
그는 숙제를 안 하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온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사물함과 책상서랍, 가방을 정리하게 했다. 그랬더니 정리도 하게 되고, 정리가 안돼서 발생된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주말에 다른 숙제를 주지 않는 대신, 정리 확인서를 나누어 주고, 부모님께 확인 사인을 받게 했다. ‘OO가 자기 방과 물건을 잘 정리하였습니다. OO 부모님.’
아이들은 어느덧 숙제로, 벌로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리를 했다. 사물함을 정리하고, 책상서랍을 정리하고, 책가방을 정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책을 안 가져오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오는 학생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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