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대학입시의 화두는 공정이다. 지난 20여 년 이상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부모 세대보다 풍족한 삶을 살 수 없는 자녀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내 몫은 내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쟁의 규칙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만족시키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머리말」중에서
그런데 공정은 과연 지고지선의 가치인가? 모두가 공정을 말하지만, 공정은 하나의 내용을 갖는 개념이 아니다. 누군가는 내 능력만큼 내가 받아야 한다는 공정을, 다른 누군가는 사회정의의 토대로서의 공정을 말한다. 근래 능력과 결부지은 공정을 논할 때, 그 능력이 나의 능력인지 내 부모의 능력인지를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말」중에서
대학입시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 가정의 문제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부모 중 누군가는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을 개시해야만 한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자녀의 공부를 방해할까 봐 최대한 조용히 생활하고, 자녀의 정신을 산만하게 할 수도 있는 여행과 같은 가욋일은 미루어 둔다. 대학입학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자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올리는 부모의 모습은 대학입시를 둘러싼 한국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는 글. 공정한 대학입시, 우리 사회 최고의 관심사」중에서
결국 대학입학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이 등장하고, 이 시험은 대학입학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지금까지도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국가는 시험의 형식과 시험 대상 교과목을 포함하여 대학입학전형의 거의 모든 요소를 결정했다. 한국의 대학입시에서 가장 오랫동안 주연을 맡았던 주체는 국가였다.
---「여는 글. 공정한 대학입시, 우리 사회 최고의 관심사」중에서
그런데 대학이 학생부를 활용하여 학생을 선발하자 학교 밖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춘 가정에서는 자녀의 활동을 다방면에서 지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은 학생 스스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은 집중 관리하면서도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또, 대학이 학생부를 평가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는 글. 공정한 대학입시, 우리 사회 최고의 관심사」중에서
대학별 본고사에서는 주관식 문제가 차츰 줄고 객관식 문제는 늘어났는데, 이것은 평가의 공정성 논란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교부가 대학에 주관식 문제를 더 늘리도록 요구하자, “학생들이 평가의 공정성 여부를 불안해한다”는 분위기를 고등학교 교사가 전하기도 했다.
---「제2장. 대학, 공정하고 교육적인 입시를 위한 경쟁의 닻을 올리다」중에서
엘리트고등교육 단계에 있던 197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정책은 부정과 비리에 대항하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학생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립대학은 부정입학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시민들의 지탄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학입시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보편고등교육 단계로 접어든 1980년대에도 여전히 공정성이 대학입학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이런 요구에 따라 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출제했고, 입학 전형방식의 교육적 타당성은 늘 공정성 뒤로 밀리고 말았다. 그러나 공정성을 의식한 대학입학 방식은 고등학교 교육을 황폐화하고 학생들을 의미 없는 시험 전쟁으로 내몰았다.
---「제2장. 대학, 공정하고 교육적인 입시를 위한 경쟁의 닻을 올리다」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 세기가 흐른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소학교 교장이 작성한 소견표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중등학교에서는 소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주관적으로 관찰한 기록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소견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부정 비리가 종종 수면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소학교 교장이 부유한 가정 자녀의 소견서를 잘 작성하여 중등학교에 입학시키는 일은 큰 사건이라 할 것도 없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당시 소학교 교육에서 학교 간, 그리고 학급 간 차이가 상당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학교 차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고, 이것은 중등학교가 내신제 수용을 망설이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모두가 오늘날의 대학입시 풍경과 비슷하다.
---「제3장. 일제고사보다 내신, 적합한 선발을 위한 첫 도전」중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 내신을 절대평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보수적 교육계는 내신을 절대평가하면 특목고나 자사고 등을 중심으로 고교 서열 체제를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한다. 반면, 진보적 교육계는 내신 상대평가는 옆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문제를 지적한다.
---「제3장. 일제고사보다 내신, 적합한 선발을 위한 첫 도전」중에서
1993년 8월 20일, 최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시행되었다. 1986년 교육개혁심의회에서 대학입시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한 후 7년 동안 수많은 공청회와 전문가회의 등을 거쳐서 수능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능의 도입은 대입제도와 관련된 이전과 이후의 어떤 개선안과 비교해도 가장 신중하고 오랫동안 검토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수능은 최초 시행 이전에 새로운 시험의 완성도를 높이고 학교 현장에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1990년부터 만 2년간 전국 고등학생 약 16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7차에 걸친 실험 평가를 거쳐서 준비되었다.
---「제4장. 수능, 화려한 등장 그리고 끝없는 퇴락」중에서
사실 ‘쉬운’ 수능 정책은 그것이 추구했던 정책목표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부작용만 가져왔다. 우선 수능에서 통합적 사고력 문항이 사라졌다. 이전의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단순 암기에 치중하는 단답식 문제를 뛰어넘어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바탕을 두되, 통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 문항이 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문항은 대체로 어려운 문제로 인식되었고, 결국 쉬운 수능을 추구하는 정책에 따라서 더 이상 출제되지 못했다.
---「제4장. 수능, 화려한 등장 그리고 끝없는 퇴락」중에서
객관적 성적 중심 선발 약화와 무시험 전형 확대 정책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향후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이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학생이 제출한 서류와 면접으로 대입 선발을 확대해 온 지난 25년간 우리나라 고등학교 현장은 교육적으로 훌륭하게 변화했나? 창의력이 뛰어나고 인성이 좋은 학생을 양성해 왔나? 미래 역량이 길러지고, 미래 인재가 대학에 입학해 왔나? 수험생의 학습 부담은 경감되었나? 사교육비는 줄어들었나? 공교육은 정상화되었나?
---「제6장. 킬러 문항 논란과 2028년 대입 개편안」중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수시모집의 확대로 대입 공정성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입학사정관제와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학생부 종합전형이 수시모집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대입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제7장. 수시모집의 등장―성적 중심 선발에서 벗어나자」중에서
입학사정관 제도에서 시작된 학생부 종합전형은 교육계 내부의 오랜 신념이 반영된 제도여서 교육계 내부의 관심과 기대가 컸다. 입시에 미치는 교사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켰고, 학교교육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입학의 과정에 고려한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되어 학부모, 학생 및 일반 시민들의 지지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교사추천서 작성 등 학생부 기록의 내실화 등 관련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고등학교,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외부 자원 이용을 극대화하여 전형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져오게 한 학부모, 학생이 제출한 자료의 신뢰성을 적극적으로 검증할 자원과 의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대학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원래 목적과 취지를 실현할 역량과 환경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제9장. 국민이 입시제도를 정한다?―대입 공론화 논쟁」중에서
고려대는 신입생 중 65.45%에 이르는 2,656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여 전국 평균의 7배 가까이를 입학사정관으로 뽑았다. 기존의 내신과 수능으로 뽑을 수 없을 정도로 잠재력, 성장 가능성, 창의력, 자기주도 학습력, 인성을 가진 특별한 인재가 매년 5천 명(3개 대학의 2011학년도 입학사정관 선발 학생 수)이 넘게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맺는 글. 시험―꺼지지 않는 문제의 불길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중에서
수시와 정시를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했던 2019년의 여론조사를 보면 교육계 내부와 국민여론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당시 여론은 다수인 63.2%가 “정시가 더 바람직하다”고 응답했고, 22.5%만이 “수시가 더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특히 학생은 73.5%가 정시가 더 바람직하다고 답했고, 이제 갓 입시를 치른 20대도 72.5%가 정시가 더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학종을 포함한 수시를 직접 경험한 학생과 20대가 분명 정시가 더욱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맺는 글. 시험―꺼지지 않는 문제의 불길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