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묵시가 조금도 신기한 일이 아니란 것을 나도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숲 근처에 산다는 것은 그런 사람, 예를 들어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마간 위안이 된다. 숲에 많은 것을 버렸지만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놓아준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숲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집착하고, 그리워한다. 한편 지금도 숲에서 늘어나고 있는 동물들은 숲 밖의 인간세계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 ---「묵시」 중에서
밤이 되고 욕실 창에 불이 밝혀지면 사자死者는 그리운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와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댄다. 그런 꿈을 몇 번이나 꾸었다. 욕실 안에서, 나도 숨을 죽이고 창밖에 있는 오빠의 기척을 온몸으로 느낀다. 언제까지 찾아올 생각일까, 이젠 이쪽으로 들어올 수 없는데. 안으로 들이고 싶어도 살아 있는 내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창밖을 서성이는 사자의 절망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몸이 녹아버릴 것처럼 슬프기도 했다. ---「욕실」 중에서
특별한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에게 강하게 이끌린 미치에는 그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상에서 유리되어, 과거나 미래도 없이, 지상의 빛깔, 하늘의 빛, 물의 반짝임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 남자를 미치에는 늘 마음속에 간직했다. 그 마음이 어느 날 하나의 형체가 되어 미치에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였다. 아이도 남자를 닮아 특별했다. ---「‘신비한 소년’」 중에서
그날부터 나는 내 좁은 집에도 아들아이가 숨어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조금도 뜻밖이 아니었다. 아들아이는 작디작은 알갱이 같아서 딸아이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면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었다. 화분의 흙 속, 책장의 빈틈, 찬장 서랍 안, 텔레비전 뒤, 세면대 선반, 옷장 안.
나는 지금도 여전히 슬픔을 모른다. 아이가 여기저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무어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작은 알갱이가 된 아이가 매일 내게 기쁨의 빛을 전해준다. ---「슬픔에 대하여」 중에서
아무런 추억도 연고도 없는 곳에 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어. 멀리 떠나오니 도쿄는 이제 시간이 멈춘 공간이 되어서, 시간 속에서 잊혀야 할 추억이 오히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되살아나. 귀신처럼 계속.
---「모든 죽은 이의 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