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독재로 해석되었을 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헌신적 혁명가를 미라로 박제하여 방부 처리된 유리관 속에 넣어 신축한 사회주의 성전에 안치시켰을 때, 비극은 희극으로 재현되었다. 개인 숭배의 극단적 형태인 시신 숭배. 레닌의 사상적 유산을 중시하는 것은 관념론이고, 시신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과학적 사고가 낳은 현실 사회주의의 관념론적 유산이다.
1970년대 소련의 당 중앙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의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물론 인민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동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인민들에게 널리 공모했다. 한 달 여의 심사를 거쳐 1등에서 5등까지 결정됐다.
5등 : 향리의 뜰을 거니는 푸슈킨.
4등 : 책을 읽는 푸슈킨.
3등 : 집게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푸슈킨. 그가 가리키는 것은 사회주의의 위대한 업적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2등 : 책을 읽는 레닌. 그가 읽는 책은 푸슈킨이라는 설명이다.
1등 :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는 레닌. 푸슈킨 동상을 세우는 데 왜 난데 없는 레닌이냐고? 제목을 보시라. 「푸슈킨을 생각하는 레닌」.
--- p.267
스탈린은 1931년 2월의 유명한 연설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발전 전략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그 후진성으로 인해 모두에게 짓밟혔다. 군사적 후진성, 문화적 후진성, 정치적 후진성, 공업적 후진성, 농업적 후진성이 그것이다. …… 우리는 선진 제국보다 50년 또는 100년 뒤쳐져 있다. 우리는 이 격차를 10년 안에 메워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해 내든가 아니면 굴복하든가 그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 스탈링의 이 연설에서 인간 해방과 노동 해방을 향한 정치적 프로젝트로서의 사회주의는 실종되었다. 연상되는 것은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론'이다. 박정희 체제를 '시장 스탈린주의' 혹은 '부르주아 스탈린주의'라 명명한 서구 좌파들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경제 개발, 자립 경제, 국방력 강화라는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목표는 급속한 공업화, 군사 강국,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지향했던 스탈린의 발전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박정희 체제와 스탈린 체제는 그 이데올로기적 양극성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근대화론'의 쌍생아였다.
--- p.214
당신의 혁명적 헌신성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름으로 똑같은 헌신성을 민중들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을 또다른 압제가 되지 않겠는지요? 당신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게 아닌지요? 당신을 두고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평가는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민중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건 또다른 억압이지요. 부패할 나이라서 그런지 나부터도 32층은 걸어서 오르내리지 못할 것 같군요. (……)
시장 자본주의도 당신을 팔아먹는 데는 결코 쿠바의 그 권력자에 뒤지지 않습니다. 일상의 키치 문화부터 나이트클럽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상품화된 당신의 초상을 지우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본주의는 혁명의 날카로운 발톱을 제거한 채 이렇게 당신을 팝의 우상으로 전유했습니다. 시장이라는 놈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요. CIA는 저리가라입니다. 그 기동성과 순발력을 보면, 시장이야말로 타고난 게릴라 같아요. 질식할 것만 같아요. 시장에 대한 혁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시장에 대한 게릴라전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저승의 혁명에서 새로 배운 게 있으면, 한 수 부탁드립니다.
아디오스, 아미고.
--- pp.289-290
남성 영웅에 대한 민족 서사는 억압과 해방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민족주의적 담론이 공유하는 바가 아닌가 한다. 민족 국가의 국가 권력은 이렇게 해서 발명된 남성에 대한 특허권을 획득한다. 더 중요하게는 발명된 남성의 이미지가 시민 사회에 깊이 뿌리박는다는 점이다.
다시 그것은 민중의 자발적 동원을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기제로 작동한다. 남성주의적 성 담론은 따라서 젠더의 차원을 넘어 전사회적 차원에서 은폐된 억압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해 시민 사회에서 전개하는 진지전의 일환으로 성 담론에 접근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공간으로 정의되며, 국토 방위의 의무를 짊어진 남성들에게는 계급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참정권이 약속되었다. 그 이면에는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없는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는 부정하겠다는 논리가 숨어 있었다. 군사화된 영웅을 요구하는 민족 국가의 성 담론이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비밀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참정권을 가진 남성은 공적 영역으로, 참정권을 갖지 못한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 남성들이 사회적 생산을 담당하는 반면, 여성들은 가정 내의 개인적 재생산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남성은 적의 대오를 쑤시고 관통하는 조국 방어의 전선과 하늘을 향해 솟구친 건설의 주체로서 남근을 상징하는 문학적 수사로 장식되기도 한다. 공적 영역을 찌르고 들어가는 공격적인 '민족 페니스'에 반해 여성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가정을 지키는 아늑한 '민족 자궁'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 pp.390-391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본 독일의 혁명가들은 돌아간다는 우스개가 있다. 프로이센적 규율이 몸에 밴 탓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최대의 좌파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이 관료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생디칼리스트들에게 그것은 생리적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구조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여성관이 전근대 독일의 가부장적 전통인 이른바 3K(Kuchen: 부엌, Kinder : 아이들, Kirche : 교회) 의식에서 한 치도 멋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인 루이제 카우츠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끊임없이 남편 카우츠키에 대한 반란을 선동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도 첫사랑이었던 요기헤스와는 이상할 정도로 지배-종속 관계에 놓이곤 했다. 이 헌신적 혁명가들의 삶에서도 드러나는 이율 배반은 일상 생활의 관성과 전통의 끈에 묶여 있는 문화적 타성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일반 대중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전선이야말로 프랑스에서 가장 노동자적인 정당이라는 르펜의 호언장담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인종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 선전에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그만큼 호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960년대 영국에서 가장 전투적인 부두 노동자들이 북아일랜드의 극우파 목사 에녹 포웰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것,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완강한 인종 차별주의, 큰 죄의식 없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평범한 독일 노동자들, 로마 제국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외친 무솔리니의 손을 들어 준 이탈리아 노동자들, 의식의 심층에 숨어 있다가 권력의 선동에 따라 일제히 일어서곤 했던 소련과 동유럽 민중들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위원회의 활동은 아직까지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는 민주노총의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적 파시즘의 토대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보여 준다.
--- pp.37-38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본 독일의 혁명가들은 돌아간다는 우스개가 있다. 프로이센적 규율이 몸에 밴 탓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최대의 좌파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이 관료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생디칼리스트들에게 그것은 생리적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구조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여성관이 전근대 독일의 가부장적 전통인 이른바 3K(Kuchen: 부엌, Kinder : 아이들, Kirche : 교회) 의식에서 한 치도 멋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인 루이제 카우츠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끊임없이 남편 카우츠키에 대한 반란을 선동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도 첫사랑이었던 요기헤스와는 이상할 정도로 지배-종속 관계에 놓이곤 했다. 이 헌신적 혁명가들의 삶에서도 드러나는 이율 배반은 일상 생활의 관성과 전통의 끈에 묶여 있는 문화적 타성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일반 대중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전선이야말로 프랑스에서 가장 노동자적인 정당이라는 르펜의 호언장담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인종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 선전에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그만큼 호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960년대 영국에서 가장 전투적인 부두 노동자들이 북아일랜드의 극우파 목사 에녹 포웰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것,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완강한 인종 차별주의, 큰 죄의식 없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평범한 독일 노동자들, 로마 제국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외친 무솔리니의 손을 들어 준 이탈리아 노동자들, 의식의 심층에 숨어 있다가 권력의 선동에 따라 일제히 일어서곤 했던 소련과 동유럽 민중들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위원회의 활동은 아직까지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는 민주노총의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적 파시즘의 토대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보여 준다.
--- pp.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