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은 게 하도 많아서, 무엇부터 먼저 물어봐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군요.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돌파하는 기분으로, 머리에 줄곧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것부터 묻겠습니다. 르네상스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처음부터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다면 나도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대답으로 응수하겠습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었습니다.
--- p.23
로마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메디치 은행이 파산하여 메디치 재벌도 해체된 상태에서는 사재를 쓰고 싶어도 남은 재산이 없다. 그래서 교황 레오10세가 궁리해낸 방법이 면죄주라는 것을 파는 일이었다. 금화를 넣어 딸랑하는 소리가 나면 그 사람에게는 죽은 뒤 천국의 자리가 예약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 속을 이탈리아인은 없었지만 독일의 순박한선남선녀들은 속았다. 물론 천국의 자리를 예약한 돈은 로마르 보내져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나 라파엘로가 그리는 걸작이나 레오 10세의 화려한 생활로 바뀌었다.
--- p.228
거의 사흘마다 바람이 불어서 비둘기집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세금을 내기 위해 가축을 처분해야 하고, 태풍이 불면 포도밭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과수원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안심하고 창작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가난 속에서 죽는 편이 낫습니다.
메디치 집안의 가장은 이 말에 껄껄 웃으면서 도나텔로가 돌려준 농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달 농장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계산하여, 그보다 조금 많은 돈을 매달 말일에 메디치 은행에 개설한 도나텔로 명의의 계좌에 입금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예술가가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만족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 p.159
같은 시기에 피렌체 시정에 깊이 관여한 조반니 빌라니는 힘찬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조국 피렌체를 자랑스럽게 서술한 『연대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단테도 『신곡』을 쓰기 시작하지요. 1300년 무렵에는 혼란과 동요에 차 있었을지 모르나, 그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숨결이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 로마의 연대기 작가들이 자기네 일상어로 글을 썼듯이 자기도 일상어인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겠다고 공언한 조반니 빌라니. 성직자가 쓰는 라틴어를 싫어하여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 단테. 그들의 기백은 얼굴 표정이나 자세에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빌라니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서술은 당시 지식인의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은 언어를 통한 표현의 가능성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유례없는 작품입니다. '지옥편'의 한 에피소드에서 단테는 음탕한 죄로 지옥에 떨어져있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인데, 단둘이 방에 있을 때 파올로가 아서 왕 이야기를 읽고 프란체스타는 거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아서 왕의 아내 귀네비어와 원탁의 기사 중의 하나인 랜슬롯의 로망스는 그것을 읽고 듣는 두 사람에게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연정을 깨닫게 합니다. 두 사람은 떨면서 입을 맞춥니다.여기까지 털어놓은 파올로는 단테에게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그날 우리는 더 이상 읽어 나가지 못했다.' 단 한 줄이지만, 그 후 두 사람이 겪은 불행을 생각나게 만드는, 얼마나 절절한 말입니다. 속어라고 경멸당했던 이탈리아어가 벌써 이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후세의 이탈리아 국어가 700년 전인 이 시대의 피렌체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
" 계속 상승하던 피렌체도 1348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호된 타격을 받게 되지요. "
" 인구가 3분의 2로 줄어들었다니까, 그야말로 지옥이었겠지요. 조반니 빌라니도 그 때 죽었습니다. "
---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