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시몽은…… 아빠가 없대.”
개구쟁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쭐해진 소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확실히 알았지. 저 애는 아빠가 없다는 걸.”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도 이 이상하고 불가능하고 괴이쩍은 사실 앞에서 아연실색했던 것이다. 아빠 없는 애가 있다니. 그들은 어떤 희귀한 현상, 신비적 존재를 대하듯 시몽을 바라보았다.
---「시몽의 아빠」중에서
어느새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동조하듯 행동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아버지가 없는 시몽을 짓밟아도 될 명분이라도 되는 듯이. 이 개구쟁이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성미가 고약한 술주정꾼인 데다 사기꾼이었고, 아내에게 거칠고 사납게 굴었다. 하지만 이따위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적법하게 태어난 이 아이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시몽을 압박해 질식이라도 시키려는 듯, 서로 바싹 몸을 대고선 점점 더 포위망을 옥죄어왔다.
---「시몽의 아빠」중에서
사랑이 그들의 화제로 떠올랐다. 〔……〕 대체로 남자들은 사랑의 정념이란 질병과도 같아서 한 사람이 여러 번 앓을 수도 있고, 그 앞에 장애물이 가로막혀 있는 경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는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지만, 여자들은 객관적인 관찰보다 감상을 앞세우며 사랑이란, 참으로 진실하고 위대한 사랑이란, 평생에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벼락과도 같아서, 일단 사랑의 벼락을 맞은 뒤에는 마음이 공허해지고 황폐해지고 남김없이 타버려, 그 후로는 아무리 강렬한 감정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저 꿈일지언정 그 자리에 다시 움틀 수는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의자 고치는 여자」중에서
그러나 그는 살면서 겪을 혹독한 시련을 일찍이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현실을 벗어나 구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저항할 힘도 수단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특별한 재주나 능력을 어릴 때부터 계발하지 못한 사람들, 싸움에서 악착같이 이기는 힘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수중에 무기나 연장 하나 없이 맹하니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 삶에 좌초하여 허우적댔다.
---「말을 타다」중에서
급기야 정치를 둘러싼 토론이 벌어졌다. 유순하지만 소견이 좁은 그들은 나름의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간이란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몽발레리앵 언덕에서는 쉼 없이 쾅쾅 울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포탄은 터질 때마다 프랑스인의 집을 부수고, 삶을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짓누르고, 수많은 꿈과 기쁨, 바라 마지않던 수많은 행복을 박살 내고, 저쪽 다른 나라의 아내와 딸, 어머니들의 가슴에 영원히 가시지 않을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삶이란 거지.”
소바주 씨가 단정하는 투로 말했다.
“차라리 이런 게 죽음이라고 말하게.”
모리소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두 친구」중에서
삼촌은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돈을 좀 날렸는데, 그건 가난한 집안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죄악이었지. 부잣집에서야 불성실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더러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만 하지. 그런 사람을 가리킬 때면 웃으며 방탕아라고 부르거든.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부모 재산을 축내는 자식은 악동, 망나니, 건달이 되고 말지! 실상 같은 행동이라 하더라도 이런 차별은 당연한 거야. 결과만이 행위의 심각성을 결정하기 때문이지.
---「쥘 삼촌」중에서
그러자 그는 다시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날마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 매번 새로운 이유를 달아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항변했고 혼자 있는 동안 상상하면서 준비했던 것보다 더 엄숙한 맹세를 덧붙였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그 끈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변명이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치밀해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 믿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는 늘 저렇게 해명하는 법이지”라고 사람들은 그의 등 뒤에서 쑥덕거렸다.
---「잃어버린 끈」중에서
루아젤 부인은 그새 푹석 늙었다. 억세고 투박하고 거친 여자, 가난한 아줌마가 되었다. 머리는 빗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부스스하고, 치마는 아무렇게나 걸쳤으며, 벌겋게 튼 손으로 목청 높여 지껄이면서 물로 텀벙대며 바닥 청소를 했다. 그러나 남편이 출근하고 없을 때면 이따금 창가에 앉아 그 옛날의 파티를 떠올리곤 했다.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환대받았던 그날 밤의 무도회를.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가 알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인생이란 참 야릇하고 변화무쌍한 거야! 사소한 일 하나가 사람을 파멸로, 또 구원으로 이끌기도 하니 말이야!
---「목걸이」중에서
“〔……〕 아휴 부인! 저 군인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요. 사람 죽이는 법이나 배우는 인간들을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먹여 살려야 한다니요! 그래요, 전 일자무식 할망구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리걸음 하면서 몸만 축내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 도움이 되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저 사람들은 왜 세상에 해가 되려고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하나! 정말 프로이센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폴란드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몹쓸 일 아닙니까?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복수하면 유죄를 선고받으니 악이 되고, 총으로 아이들을 사냥감처럼 쏴 죽이면 가장 많이 죽인 사람한테 훈장을 수여하니까 선이 되다니요? 아니, 나는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비곗덩어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