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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522g | 136*195*28mm
ISBN13 978893742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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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2020 공쿠르상 수상작. 파리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난기류로 위기에 처하지만 무사히 착륙하고, 3개월 후, 같은 여객기가 같은 사람들을 싣고 같은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난다. 시공간의 오류가 빚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소설 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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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좀 더 치열하게 살았다면 세상을 어느 해안으로 데려갔을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사라진들 세상의 흐름이 뭐가 바뀔까. 이제 나는 존재하지 않는 자갈들의 길을, 아무 데로도 데려가 주지 않는 길을 걷는다.
나는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산 자의 가면이 죽은 자의 얼굴에서 안식을 찾는 하나의 점이 되어 간다. 오늘 아침, 청명한 날씨 속에서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나는 내 존재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불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헛되이, 마침내 나는 순간을 미루지 않을 마지막 문장을 쓴다.”
이 글을 마치고 편집자에게 파일을 전송한 후, 빅토르 미젤은 끝내 이름 붙이지 못한 극심한 불안에 떠밀려 발코니로 걸어가 난간 너머로 떨어진다. 혹은 몸을 던진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집필 중이던 글 전체가 이 최후의 몸짓으로 귀결된다.
“나는 내 존재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불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2021년 4월 22일 정오의 일이다.
--- p.39~40

그들이 빼먹은 요소는 없다. 국방부가 앞면이 나올 경우와 뒷면이 나올 경우를 다 따져서 대응책을 제시하라고 했다면, 그들은 앞면, 뒷면만이 아니라 동전이 똑바로 설 희박한 경우까지 감안해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안서를 제출하고 열흘 후인 2002년 4월, 국방부는 빨간 사인펜으로 다음과 같이 써서 문건을 돌려보낸다. ‘여기서 고려한 상황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할 건지?’
티나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동전을 던졌는데 허공에 멈춰 서 있는 경우를 가정하라는 건가.”
--- p.149

“프로토콜 42가 발동한 이유는 다른 에어 프랑스 006이 당초의 예상 도착 시각인 16시 35분에 JFK 공항에 착륙을 했기 때문입니다. 네 시간도 더 전에 말입니다. 하지만 기종도 다르고 기장과 부기장도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저기 서 있는 비행기와 똑같은 에어 프랑스 006 보잉 787기가 똑같은 기체 손상을 입고, 동일한 기장과 부기장의 조종하에 동일한 승무원과 승객을 태운 일이 있습니다. 요컨대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여객기와 똑같은 비행기가 JFK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것이 지난 3월 10일 17시 17분의 일이었습니다. 정확히 백육 일 전이지요.”
원탁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CIA 요원이 손을 들어 소란을 잠재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을 했다고요?”
--- p.186

그는 매혹 반 두려움 반으로 또 한 명의 앙드레를 바라본다. 그의 주름살, 우윳빛 섞인 사파이어 같은 회색 눈, 여윈 뺨과 그 언저리에서 시작되는 하얀 턱수염 그리고 듬성듬성한 머리를. 앙드레는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면도를 하지만, 그와 거울 속 그는 서로 길들이기에 이르렀다. 이곳의 카메라는 강직하다. 고해상도의 화질은 무자비하고, 카메라 앵글은 예의고 뭐고 차리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늙은 사내다. 닳고 닳은, 매력 없고 지친 사내. 때때로 구현된다고 생각해 온 변치 않는 젊음의 인장(印章)을 그 얼굴에서 찾아보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노년이 오욕의 굴레처럼 구석구석을 차지했다. 그는 퉁퉁 붓고 살찐 자신을 발견한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정말이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롤링스톤스에 열광했는데 비틀스가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 p.322

“얼마나 남았어?” 데이비드가 다시 묻는다. “적어도 석 달은 살 수 있겠지. 그 이상일까?”
“다른 치료법을 써 볼 거야. 너 자신이라는 실험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어떤 치료법이 너에게 잘 안 받는지는 알고 있어.”
폴이 슬프게 미소 짓는다. 의학과 치료 방법에 대한 믿음이 그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강하다. 그것이 그가 제정신으로는 못 할 이 직업을 선택하고 잘 해내는 이유다. 실은 이 직업이 자기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폴은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정말 잘 속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능숙하게 안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숨이 잘 안 쉬어진다. 한 남자가 옆에서 죽어 가고, 그 남자는 그의 동생 데이비드다.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하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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