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지 않은 책이라 할지라도 모임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별 감흥이 없는 책이었는데, 독서모임 친구들의 다른 관점을 듣고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책을 읽었다는 이도 있었지요. 그래서 함께 읽으면 재미나고, 재미나서 함께 읽는 선순환이 일어나는데 제가 ‘책을 함께 읽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p.21
독서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미있는 책을 만나서 푹 빠지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에 재미난 책이 얼마나 있냐고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무슨 책을 읽을지 정하는 문제인데요. 밑줄독서모임을 시작할 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목록을 부록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제가 밑줄독서모임을 오랜 세월 진행하면서 여러 모임에서 읽은 책들이고, 많은 분이 감동하고 인정한, 별점 높은 책의 목록입니다.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책을 추천받아 목록을 정해도 됩니다만 그 방법으로 했더니 오래 못 가더라는 경험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을 수 있는 책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지요. 이 책에서 제시한 목록을 참고로 해서 읽을 순서를 구성원들과 의논해 보세요. 가능하면 가벼운 책부터 시작해 책에 푹 빠지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p.26
다른 생각은 사람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함께 책 읽는 모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이 ‘생각 차이’입니다. 친한 사이라도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지요. 독서모임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합니다. 감정이 상해 서로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모임에서 나가기도 하고, 심하면 도란도란 나누던 모임이 깨지기도 하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심하다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 p.48
밑줄독서모임을 시작했다면 적어도 100권을 읽을 때까지는 ‘온유한 책 읽기’를 하자고 약속합니다. 온유한 책 읽기란 책에서 먼저 좋은 점을 발겨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읽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책과 사람에 마음을 열고자 하는 노력을 말합니다. 책의 내용이 내 생각과 다를 때, 모임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겁니다. 처음에는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이 내게 자극을 주고, 그로 인해 내 생각을 더 또렷하게 알게 되지요. 자신의 부족한 점도 발견하고, 누군가의 의견을 비판할 때도 훨씬 논리가 풍부해집니다.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이지요.
--- p.67
밑줄을 그은 부분이 겹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나 참 신기한 것이 저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그어 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그었다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으로 그 책을 읽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어서 밑줄독서모임은 흥겹습니다.
--- p.86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제가 매년 했던 이벤트가 있었어요. 학급문고 이용 금지령을 내리는 거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면서 “학급문고에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했지요. 처음엔 아이들도 ‘음, 조금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궁금해하며 물어봅니다. “학급문고 언제 읽어요?” 그럴 때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볼래?”라고 말합니다. 학급문고 책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또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면 아이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집니다. 그때쯤 학급문고에서 빼낸 책을 한 권 보여주면 아이들 입에서는 “읽어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요. 그렇게 ‘책 읽는 교실’은 탄생합니다.
--- p.107
사회나 과학 시간에 교과서로 밑줄독서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부분, 가장 기억하고 싶은 내용에 밑줄을 치고 발표를 하는 거예요. 어떤 과목이든 밑줄독서 형식으로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학생 중심의 수업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엉터리로 밑줄 그어 놓는 아이들도 있지요. 하지만 발표를 지어낼 수는 없습니다. 발표하면서 ‘내가 왜 여기 밑줄을 그었지?’라는 생각이 드는지 민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아이들도 친구들이 밑줄 그은 내용을 들으면서 다음부터는 자신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 p.109
가족과 대화가 안 된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써서 대화를 시도해보는데, 노력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느낌이라고 하세요. 부모 입장에서는 대화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간섭, 잔소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잘못하면 관계가 단절되고 말아요. 가족과의 대화가 즐겁다면 피할 이유가 없겠지요. 《비폭력 대화》의 저자 마셜 로젠버그는 어떤 대화는 나로서만 대화였을 뿐 상대에게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바꾸는 일은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고 하지요. 그런 변화를 원한다면 《창가의 토토》를 가족이 함께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p.122
청소년기에는 많이 읽는 독서도 중요하지만 한 권을 읽고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특히 중요한데요. 밑줄독서는 쉽고 편하게 집중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쓰기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이지만 밑줄 그은 좋은 문장을 베껴 쓰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덤으로 문해력, 어휘력을 기를 수도 있어요.
--- p.129
“아이들은 모임을 통해 일종의 ‘수용 받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돌아가면서 밑줄에 관해서 이야기하니까 어느 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지 않고, 어떤 판단이나 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니까요. 그럼 내 생각이나 감정이 수용 받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 p.129
‘전력독서’도 아이들과 즐겁게 도전해볼 만한 독서법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어른들이 가장 곤란할 때가 아이들이 “책을 못 읽었는데요!”라고 할 때입니다. 기운 빠지는 순간이지요. 그럴 때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제가 자주 이용하는 독서법입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30분 동안 책 읽으면서 밑줄 긋기!”
읽은 분량이 다 제각각이므로 어디까지 페이지를 정해서 읽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 놓고 읽게 하는 거지요. 째깍째깍 소리가 나는 초시계가 있다면 더 효과적입니다.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운동 경기처럼 느껴져서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이때 저는 10분 간격으로 초콜릿 세 알을 먹게 합니다. 책과 함께 기분 좋은 달콤함을 맛보게 하는 것이죠. 이처럼 아이들 밑줄독서모임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지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 p.133
‘이 책 별로다’라는 생각으로 독서모임을 갔는데 다른 사람들의 밑줄과 생각을 들으면, ‘와, 이런 책이었어?’ 하는 식으로 책에 대한 평가가 뒤집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험은 제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밑줄독서를 알게 되고 전 무엇보다 교사로서 자신감과 보람을 얻게 됐어요. 밑줄독서는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만들어요. 요즘 좋은 시청각자료가 많긴 한데, 시각 자료 보기와 밑줄독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봐요. 밑줄독서는 책장을 넘기고, 밑줄을 긋고, 그것을 써보면서 자기 몸으로 경험하는 거잖아요. 그 효과를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피부로 느껴요.
--- p.168
책 읽기가 공부할 때도 도움이 크게 돼요. 일단, 교과서를 자세히 읽게 되고 필기도 전보다 잘하게 되었어요. 밑줄을 치다 보니까 무엇이 키워드인지, 어디에 밑줄을 쳐야 전체적으로 이해를 하는 건지, 어떤 부분을 기억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 논술학원에서 책 읽고 토론하는 것도 해봤어요. 하지만 밑줄독서모임에서 하면 확실히 달라요. 학원에서 하는 거는 선생님이 다 정해주면 그거에 맞는 자료를 찾고 발표를 하는데, 여기서는 제가 다 해야 합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을 찾고, 토론 주제도 본인이 정해요.
---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