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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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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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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18g | 140*205*14mm
ISBN13 9791130671000
ISBN10 11306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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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창인 6월에 때아닌 눈이 내렸도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어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말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의도가 들어 있었다. 그걸 잘 아는 대신들은 털방석 위에서 조용히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한 도승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해괴한 일이 벌어졌으니 해괴제를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승지의 얘기를 들은 임금은 손바닥으로 용상을 내리쳤다.
“도승지도 밤중에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이게 해괴제를 지내는 것으로 될 거 같은가?”
“하오나, 천지가 뒤바뀌고 계절의 순서가 어그러졌으니 마땅히 하늘에 제를 지내는 것이 도리이옵니다.”
--- p.28쪽

“아무래도 양화진 쪽으로 옮겨야겠다.”
아버지의 얘기를 들은 화길이가 입을 열었다.
“거긴 괜찮을까요?”
“이번에 가보니까 얼음이 두껍게 얼긴 했어도 그 아래 물고기들이 제법 있더구나. 얼음을 녹여서 물로 쓰고 물고기를 잡아서 먹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로 떠나시게요?”
“응, 놈들이 물러나긴 했지만 여기에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잠깐 말을 끊은 아버지가 화길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너는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 거다.”
“네? 그럼 전 어디로 가요?”
놀란 화길이의 물음에 아버지가 북쪽 하늘을 바라봤다.
“너는 부광이와 함께 북쪽으로 가야 한다. 백두산으로.”
--- p.67

“어젯밤에 본 그 사람 아니야?”
상투가 풀어헤쳐진 채 한 남자가 눈 쌓인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부광이의 말대로 어제 낫을 들고 동굴로 들어오려던 그 사람이었다. 옆에는 어린 딸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얼어 죽어 있었다. 남자의 가슴은 나무로 만든 말뚝 같은 것에 꿰뚫려 있고, 손은 뭔가를 움켜쥐고 있던 모양으로 얼어 있었다. 그걸 본 화길이가 중얼거렸다.
“누가 고기를 빼앗으려고 죽인 모양이네.”
둘은 말없이 다시 길을 떠났다. 부광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이런 광경을 엄청나게 많이 보겠지?”
화길이는 차마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 p.83

모두가 경이로운 눈으로 한 사람을 바라봤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가죽을 비롯해 온갖 옷가지들을 껴입은 사람들과 달리, 백마를 탄 성창 대군만은 얇은 저고리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추운 날씨인지라 동상에 걸려서 피부가 썩거나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데 성창 대군은 옷고름도 풀어 헤치고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 강추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고 있었다. 성창 대군이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창백한 피부에 갸름한 얼굴은 귀하게 자랐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성창 대군의 뺨과 입술에는 상처가 나 있고, 목덜미에는 불에 덴 흔적도 보였다. 귀에 달린 옥 귀걸이가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존경심 가득한 부하들의 눈길을 듬뿍 받은 성창 대군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환도를 크게 휘둘렀다.
“전진!”
--- p.121

“일단 여기서 며칠 쉬어. 나도 구해줬고, 말도 무사히 데리고 왔으니까.”
“그럴게요.”
화길이는 경혜와 함께 넓적한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백괄이 아저씨가 둘에게 말했다.
“여긴 따뜻해서 이불만 덮어도 잘 잘 수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월화가 며칠 쉬라고 했으니까 사흘 정도는 머물러도 괜찮다. 음식은 매일 아침이랑 저녁때 나눠준다. 잠시 후에 저녁으로 죽을 나눠줄 거니까 와서 먹어라. 대신 절대로 함부로 밖에 나가거나 연락을 취하는 등의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알겠지?”
엄하게 얘기한 백괄이 아저씨에게 화길이가 물었다.
“야인들 때문에 그런 건가요?”
백괄이 아저씨가 주변을 돌아보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성창 대군이 이끄는 무리가 북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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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 어느 방에 상상력의 샘이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풍성하게 펼칠 수 있을까. 이번에는 기후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 조선 시대 소년 소녀의 모험이다. 정명섭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여느 때처럼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훅 끌어들인다. 작가의 말에서 ‘재미있게 즐겨 달라’라고 했지만 재미와 의미를 다 갖춘 작품이다. 화길과 경혜,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운명을 쫓아가면서 재난이 어떻게 한 사회를 무너뜨리는지, 어떤 모습으로 약자들을 덮치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속편을 기다린다.
-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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