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야콥 폰 군텐은 성실한 부모의 아들로 이러이러한 날에 태어나, 이러이러한 곳에서 자랐으며, 어느 누군가의 시중을 드는 데 필요한 몇몇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 벤야멘타 학원에 훈련생으로 들어왔다. 본인은 삶에 아무런 희망도 갖고 있지 않다. 본인은 엄히 다스려지기를 희망한다.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하기 위해서다. 야콥 폰 군텐은 많은 것을 장담하지는 않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행동할 것을 결심한다. --- p.56
이곳 벤야멘타 학원에서는 상실감을 느끼는 법과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능력,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훈련생들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삶의 희망들을 가슴속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고 밝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가지런히 빗질된 머리 위로 수호천사라도 날아다닌다고 느끼는 것일까?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제한받고 있기 때문에 밝고 걱정 없이 지내는지도 모른다. --- p.103
난 내가 밑바닥,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몰락한 후예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출세를 위해 필요한 특성들이라고는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한 가망 없는 후예이다. 어쩌면, 그렇다, 모든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난 찬란한 행복을 그려보는 덧없는 시간들을 믿지 않는다. 벼락출세한 사람들이 갖는 덕목들이 내겐 전혀 없다. (…) 몰락한 후예로서, 혹은 내가 그 어떤 존재이든, 나는 그런 신사들, 어쩌면 다소 잘난 척할지도 모를 그런 신사들의 시중을 들게 될 것이다. 정직하게, 충실하게, 성실하게, 있는 힘을 다해, 아무 생각 없이, 사사로운 이익에 전혀 집착하지 않고 시중을 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그런 식으로만, 그러니까 아주 예의 바른 태도로만, 누군가의 시중을 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p.130~131
나는 짐을 싸고 있다. 그렇다, 우리 두 사람, 원장 선생님과 나, 우리는 짐을 싸느라, 짐들을 차곡차곡 잘 싸느라 정신이 없다. 싸던 것을 멈추고, 치우고, 잡아끌고, 밀어 옮기느라 바쁘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 나는 벤야멘타 씨와 함께 사막으로 간다. 보고 싶다. 황야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보고 싶다. 호흡하고, 존재하고, 정직하게 선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밤에 잠을 자고 꿈을 꿀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 pp.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