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건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폭력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건 결코 찬성하지 않아. 폭력을 증오해서는 아니고, 폭력을 이용해봤자 다른 의 차별은 절대 없앨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증오를 먹이로 삼는 차별주의자를 기쁘게 하는 일만 되니까. 그래서 신 군, 널 그 집단에서 빼낸 거야. 그곳에 있으면 안 돼. 우리들은 좀 더 현명하게 싸워야만 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도 간디를 지지한 인도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성공한 거야. 재일 동포는 수가 너무 적어.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을 통과시켰던 여론의 힘도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워. 우리는 현명하게 싸울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신 군, 나한텐 네가 꼭 필요해.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 있어줘.”
--- p.23
그 기분은 나도 잘 안다. 이 부당한(혹은 부당할지도 모르는) 취급은 과연 차별을 바탕에 둔 것일까? 알 수 없다. 병원 대기실에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의 이름이 먼저 불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구청 직원의 냉정한 태도는 나 말고 다른 구민에게도 똑같을까, 콜센터에서 전화로 이름을 밝힌 뒤에 태도가 변한 것 같은 건 내 신경이 과민한 탓일까, 재일 코리안끼리 갔던 음식점에서 나온 이 음식은 과연 깨끗할까, 하나하나 의심하게 되는 그런 세계, 그런 환경.
--- p.206-207
아웃사이더 몇 명으로 세운 ‘오쿠보 수비대’였지만, 현장의 폭력에 현장에서 대항한 것은 그들뿐이었다. 논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주관적인 정의에 굴하지 않고, 눈앞의 약자를 지키지 못하는 정론은 무시하고, 악은 용서하지 않는다. 수비대 결성 당시 마을의 상점 사람들이, 한국계 주민들이, 여성, 노인, 아이들이, 그 뒤로 한동안은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됐던 것도 수비대와 그 지원자들이 애쓴 덕분이었다. 이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당시, 시우 사건 직후 혼란기의 이야기다. 오쿠보 수비대의 존재가 있든 없든 역사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으로 가속시켰을 뿐이다, 라고 평하는 것은 당시의 무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마을의 현장을 모르는 자가 지껄일 수 있는 허튼소리다. 그러나 허튼소리더라도 그 또한 사실의 일면이기도 했다.
--- p.284-285
복수극은, 현실에서는 왜 어려운가?
와신상담. 섶나무 위에 눕는 고통, 쓸개를 핥는 씁쓸함을 계속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복수심은 세월과 함께 옅어진다, 그것이 진실이다.
그래서 요즘의 일과는 인터넷에서 녀석들의 댓글을 읽는 것이다. 녀석들이라고 해도 그 세 명을 가리키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동일 인물일 것이다. 익명의 녀석들. 익명의 악의.
‘일본인한테 그렇게 헤이트 크라임을 하더니, 그야말로 자업자득.’
‘인간 같지도 않은 조선인 한 마리가 죽은 것 가지고, 우리 일본인이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어!’
‘그냥 사소한 의문인데, 지금의 일본에 집착하지 말고 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거야? 가족들이 죽인 거나 다름없잖아.’
이것들이, 내게는 쓸개다. 핥고 씹어서 그 즙을 삼키며 복수의 마음을 되새긴다.
여동생이 살해당했을 때의 일은 몇 번이나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고도, 문득.
--- p.293-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