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말을 되짚어본다. 내가 미술에 매혹되어 재미와 기쁨을 느끼는 과정도 이와 같아서다. (…) 미술은 탐구의 대상이다. 어쩌면 아무리 탐색해도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미술은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언제든 다시 새롭게 태어날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세계와 사랑에 빠지다, 5~6쪽」중에서
그녀 말년의 삶과 예술은 살 한 점, 물 한 방울 남기지 않는 사막의 뼈를 닮았다. 그녀가 살던 집은 군더더기와 장식이 완전히 배제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표본 같았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추모식도 거행하지 말라고 생전에 당부했다. 말기 작품은 한 줄의 선으로 압축되기도 했다.
---「꽃, 크게 보아야 아름답다-조지아 오키프, 36쪽」중에서
제1·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본 야만성, 실연의 아픔과 사랑의 파국 속에서 로랑생은 여성의 부드러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러나 화사하고 부드러운 여인들은 한결같이 그 이면에 저마다의 우수와 억제된 슬픔을 품고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주디 시카고는 “로랑생의 그림에는 여성의 기교와 향기로운 달콤함 뒤에 억제되고 억압된 분노를 말하는 슬픔의 아우라가 있다”라고 평했다.
---「색채의 황홀, 그 너머의 것들-마리 로랑생, 57쪽」중에서
천경자에게 ‘꽃’과 ‘한’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고 싶은 길이 ‘꽃길’이라면, 가야 하는 길은 ‘한의 길’이었다. ‘한’과 ‘꽃’, 이 두 갈림길은 평행선으로 마주하다가 이내 서로의 끝이 운명처럼 맞닿았다. 결국 포개져 한 몸이 되었다.
---「화려한 색, 화려한 설움의 자취-천경자, 77쪽」중에서
「성숙의 시대」는 늙어가는 아내 로즈와 젊은 연인 카미유,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망설이는 로댕, 이들의 삼각관계를 다룬 자전적 작품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삼각관계로만 한정해서 이 작품을 해석한다면 그 매력은 반감된다. 카미유 자신도 언급했듯, 이 작품은 세월의 흐름과 마주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유다.
---「더는 나를 속이지 않기를-카미유 클로델, 158쪽」중에서
판위량은 자국에서 쫓겨난 디아스포라 예술가였고, 그렇다고 유럽이나 미국 모더니즘의 틀 안에 자신을 맞출 수도 없었던 경계인이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영원한 타자였다. 그녀는 직업 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국가 차별 등 역사적 장벽의 여러 경계를 왔다갔다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분투했다. (…) 판위량은 서양미술의 수혜자였지만 서양화가들이 왜곡한 아시아 여성의 몸을 온전하게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누드는 나의 자유다-판위량, 187쪽」중에서
아브라모비치에게 어느 미술평론가가 행위예술가와 연극배우의 차이점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녀는 “연극에서 칼은 플라스틱이고, 피는 토마토케첩이다. 행위예술에서 칼은 진짜 칼이고, 피는 몸에서 흐르는 진짜 피다”라고 대답했다. 극장 안의 공포는 진실이 아니지만, 행위예술에서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몸으로 두려움을 마주하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 256쪽」중에서
콜비츠의 「피에타」는 비통한 모습으로 세상에 묻는다. 내 아들이 왜 죽었는가? 무엇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죄지은 자들은 어디 있는가? 살아남은 자는 이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인류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고통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케테 콜비츠, 278쪽」중에서
예술가가 된 부르주아는 이해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과 대면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배신감,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죄책감, 아버지가 떠난 후 느꼈던 그리움과 사랑, 어머니에 대한 연민. 부르주아는 그 혼란한 감정들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무의식을 파고들면서 ‘인간의 본질’을 마주했다.
---「예술은 복원이다-루이스 부르주아, 300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