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서 하얀색 바이크 한 대가 단기통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 바이크구나!”
SYM 울프 클래식(Wolf Classic)125. 나는 쭈뼛거리며 상태를 살폈다. 누가 봐도 초보인 내 모습에, 바이크 주인은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가 깨끗이 타서 바로 타도 문제없을 거예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중에서
바이크를 타며 주의해야 할 점을 살피며 건전한 바이크 생활을 즐기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다가 밤잠을 설쳤다. 이미 숱하게 찾아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복습했다. 앞 브레이크와 뒤 브레이크, 기어 조작법 등 익혀야 할 부분이 많았다. 피아노를 칠 때도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와 쓰임이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져야 연주되는 것과 비슷하다. 동시에 페달을 밟기 위한 발의 움직임도 익숙해져야 한다. 나도 바이크라는 악기를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수없이 상상했다. 무대에 서기 위해 여러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는 연주자처럼.
---「아슬아슬 첫 주행」중에서
우리는 그 짧은 찰나에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자신의 남편과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벤리110 잠깐 타다가 더 큰 바이크로 올라가야죠.”
“그럼요. 사실은 울프125를 타려다가 꿍을 해 버리는 바람에 처음부터 시작해 보려고요.”
사장님은 내 말을 듣더니 처음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었다. 그 공감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헬멧 사러 가요」중에서
봉평쯤 지날 때였을까.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먼 곳에서 익숙한 번호판의 차량이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고 있었던 것. 아빠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반갑다고 클랙슨도 울리고, 손도 흔들고, 전화도 했을 텐데, 죄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죄지은 사람이 맞았다. 아빠 몰래 바이크를 타는 ‘몰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렘 가득 첫 장거리 투어」중에서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면 최종적으로 갈망하는 ‘드림 바이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드림 바이크는 혼다 CB1100이었다. 혼다의 CB 라인은 60년 가까운 역사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바이크가 CB1100이다. 1,140cc의 클래식 바이크로 4기통을 가진 바이크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 지금까지 단기통만 타 본 내게 4기통 엔진은 어떤 느낌일까. 그 호기심을 시작으로 나의 기변병은 불치병이 되어 갔다.
---「기변병 감염주의보, 2종 소형 도전」중에서
친가 쪽에 바이크를 타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서, 아빠가 더욱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아빠 몰래 잘도 타고 다녔다. 이렇게 몰래 타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의심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라이딩을 나갈 때는 아빠가 다른 일에 집중하고 계실 때 잽싸게 나왔고, 백팩을 메고 다니며 헬멧을 가방에 숨기기도 했다. 벤리110은 헬멧을 탑 박스에 보관하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들킬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몰바 라이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바이크에 대한 열정이 앞서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몰바」중에서
나는 아빠에게 몰바를 고백한 후 생각에 잠겼다. 아빠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걸로 봐서 ‘사실은 아빠도 바이크에 로망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크가 위험하다는 인식과 주변 사건들 때문에 반대해 왔지만, 마음속에 흠모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진 않을까.
왜냐하면 아빠는 20대에 종종 큰아빠의 바이크를 빌려 타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와 연애 시절 데이트가 끝난 후 큰아빠의 바이크에 엄마를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엄마의 집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해 봤는데, 괜스레 내 마음이 다 설레곤 했다.
---「바이크 전도사」중에서
‘내가 아빠께 바이크를 타자고 권했으니, 내가 바이크를 선물해 드리는 건 어떨까.’ 레블500은 바이크 중 비싼 편에 속하는 건 아니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며 나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먹게 되었다. 더 이상의 고민은 아빠가 바이크를 즐길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 아빠께 서울에서 바이크 구경을 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레블500을 판매하고 있는 한 업체로 향했다.
---「서프라이즈」중에서
오늘은 아빠의 인생 2막 시작의 기쁨을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 아빠의 첫 라이딩 목적지로 엄마 산소를 찾아온 것이다. 큰집 옆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와 함께 엄마의 산소가 있다.
“엄마 우리 왔어.”
“춘희 나 왔네. 그동안 잘 있었지? 딸이 오토바이 한 대 사 줘서 둘이 타고 같이 왔어. 생전에 있었으면 뒤에 같이 타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 텐데. 참 아쉽네, 그려.”
---「부녀 모토 다이어리 서막」중에서
어느 날, 아빠에게 바이크를 선물하는 영상이 100만 조회 수를 넘었다. 상상도 못 한 조회 수에 놀라기도 하고 아빠와 나는 매일 댓글을 보며 즐거워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실제로 아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 댓글을 읽느라 피곤함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정말이지 아빠와 함께 유튜브 영상을 찍게 되면서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여러 매체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연락이 온 곳은 원주 MBC였다.
---「TV에 나올 줄이야」중에서
어느덧 겨울이 내렸다. 거리마다 소복이 눈이 쌓인 이 계절은 라이더에게 그리 반가운 계절이 아니다. 눈길이나 얼어 있는 도로를 달리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에 이맘때가 되면 바이크의 배터리를 분리한다. 한동안 봉인해 놓고 있다가 봄이 오면 다시 시즌을 시작한다.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겨울도 종종 햇살을 내비칠 때가 있다. 나는 그 귀한 날을 붙잡아 횡성 태기산까지의 라이딩을 떠나 보기로 했다.
---「추위와 열정 사이, 태기산」중에서
어느 날 밤 나는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하게 접어 두었던 나의 소망을 하나둘씩 펼쳐 봤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 뒀던 해외여행, 늘 꿈만 꾸던 바이크 전국 일주,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사업을 더 키워 보기, 올해는 꼭 앨범 내기 등. 나름대로 고이고이 접어 둔 버킷리스트가 주머니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전국 일주」중에서
‘즉흥적으로 여행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해지지 않은 곳을 가는 거다. 결과를 모르기에 과정에서 자주 흔들리는 청춘이 아름답듯, ‘뜻하지 않은 여정에서 뜻밖의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비롯되었다. 즉흥적으로 유튜브 구독자, SNS 팔로워분께 나의 다음 목적지를 정해 달라고 요청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전국 일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