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 언덕 아래 작은 집이 하나 있어.”
산벚나무 언덕과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정겨운 산모퉁이에 작은 가게가 하나 숨어 있다. 등산객들이 드물게 들르고 아랫마을 어르신들이 종종 마실 오는, 아주 한가로운 이 가게에는 할머니 한 분이 검둥개 한 마리, 오리 열두 마리와 같이 산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오리들은 계곡으로 나들이 가고, 검둥개는 가게 앞에서 꼬박꼬박 조는데, 가게 안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할머니가 가게 앞 평상에 붓이랑 물감을 꺼내 늘어놓는다. 할머니가 하려는 건 다름 아닌 오리알에 그림을 그리는 일. 할머니는 오리알 하나하나마다 봄날 햇살 같은 노란 병아리를 정성껏 그리고는 흐뭇한 얼굴로 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이렇게 예쁜 알은 처음 봐!”
할머니가 텃밭에 간 사이, 뒷산에서 놀던 아기 여우가 꽃바람에 날려 데굴데굴 가게로 굴러온다. 아기 여우는 병아리가 그려진 예쁜 알들을 보고 넋을 놓는데, 낯선 기척을 느낀 검둥개가 잠에서 깨어 왈왈 짖어댄다. 당황한 여우는 홀딱, 홀딱, 홀딱, 재주를 넘어 하얀 알로 변신, 오리알 바구니에 숨는다. 검둥개는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계속 짖지만, 까닭을 모르는 할머니는 그림 그리다 하나를 빠뜨렸다고 오해를 한다. 검둥개는 답답해서 낑낑거리고, 할머니는 알에 마저 병아리를 그리겠다고 나서는데, 갑자기 알이 말을 한다.
“아기 여우를 그려주세요.”
할머니는 깜짝 놀라지만 그래도 소원대로 병아리 대신 아기 여우를 그려 준다. 갸름한 얼굴, 통통한 꼬리, 여우콩 같은 눈까지. 알은 들썩들썩 신바람이 나고, 할머니는 그런 알이 신기하고 귀엽기만 하다. 그런데 이 아기 여우, 들키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