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의 시조는 공자지만 유가의 이상을 체계화하고 학문으로서 성립시킨 사람은 맹자라고 할 수 있다. 덕치(德治)의 이상, 그 덕치를 가능하게 하는 선한 본성의 이상, 그리고 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메우기 위한 수양론의 전개와 인륜 교육에 대한 논의 등, 『맹자』는 유학 사상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 p.17, 「맹자와 『맹자』 이해하기」 중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승(千乘)의 녹을 받는 공경(公卿)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승(百乘)의 녹을 받는 대부(大夫)입니다. 만에서 천을 가지고, 천에서 백을 가지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의(義)를 하찮게 여기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모두가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질면서 자기 부모를 버리는 사람은 있지 않으며, 의로우면서 자기 임금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 하는데,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맹자』 「양혜왕장구 상」 1장)
--- p.52, 「행복한 욕심」 중에서
맹자는 마치 오늘날의 세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 길을 놓아두고 말미암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불쌍하도다. 사람이 닭과 개가 나간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면서 단호하게 꾸짖는다. 그 길을 놓아두고 말미암지 않는다는 말은 의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른다는 것은 불인(不仁)한다는 말이다. 불인은 남과 나를 구별하는 마음, 남을 차별하는 마음, 나를 위해서 남을 힘들게 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남이 나에게 하면 싫어할 것들을 남에게 스스럼없이 한다.
맹자는 저 말의 끝에 ‘학문의 길은 다름이 아니라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며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맹자가 살았던 때는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때이다. 춘추시대보다 전국시대가 사람이 더 살기 힘든 시대라고 했다. 맹자는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원인을 인간의 이기와 욕망에서 찾았으며, 그 해결책을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는 데서 찾았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이 태어날 때 가졌던 마음, 곧 남과 나를 같이 생각하는 마음, 인의 마음을 갖는다면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마음은 없게 될 것이다. 맹자가 사람이 자라면서 놓아버렸던 그 마음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23~124, 「지금은 마녀사냥을 멈추어야 할 때」 중에서
『맹자』 「이루장구 상」 편을 보면, “행하였으나 얻음이 없을 때는 모든 문제를 돌이켜 나에게서 구하라.”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돌이켜 나에게서 구하라’라는 말은 『맹자』 「공손추」에도 나온다. 모두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우임금의 아들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우임금이 하나라를 다스릴 때,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아들 백계(伯啓)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우게 하였으나 참패하였다. 백계의 부하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여 다시 싸우자고 하였다. 그러나 백계는 “나는 유호씨에 비하여 병력이 적지 않고 근거지가 적지 않거늘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는 나의 덕행이 그보다 못하고, 부하를 가르치는 방법이 그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나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아 고쳐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하고는 싸우지 않았다. 이후 백계는 더욱 분발하여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백성을 아끼고 품덕(品德) 있는 사람을 존중하였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유호씨도 그 사정을 알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백계에게 감복하여 귀순하였다. 이로부터 유래된 고사성어 반구저기는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말로 사용되었다.
--- p.141~142, 「잘못은 자기에게서 찾아야 한다」 중에서
예는 참된 삶의 구체적인 행동 양식이다. 참된 사람은 본마음을 따라 남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 양식이 예이다. 그런데 예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실천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예만 실천하고 도리를 모르면 형식적으로만 참된 인간이 되고 내용으로는 참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예를 배웠다면 예의 본질인 도리를 또 알아야 한다. 도리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로서 의(義)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는 만나는 사람마다 따르는 방식이 있다. 그 방식에 맞게 사람을 만나야 한다. 방법은 예의이다. 사람을 만날 때는 예의로 해야 한다. 특히 현인을 만날 때는 더욱 예의로 해야 한다. 예의로 하지 않으면서 그를 만나려고 하는 것은 그에게 들어오라고 하면서 문을 닫아놓는 것과 같다.
--- p.152~153, 「문을 닫고서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다」 중에서
맹자가 제선왕에게 묻기를, “왕의 신하 중에 그 처자를 그의 벗에게 맡기고 초나라로 여행을 간 자가 있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그 처자가 추위에 얼고 주리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절교를 하도록 하지요.” 하였다. 묻기를 “왕의 신하로 옥관을 담당하는 사사가 그 옥관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답하기를 “파직시키지요.” 하였다. 또 묻기를 “왕께서 다스리는 사방의 국경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좌우에 있는 사람을 보고 다른 말로 화제를 바꾸었다.(- 『맹자』 「양혜왕장구 하」 6장)
친구의 부탁을 지키지 못하면 그 친구에게 절교를 당할 것이고, 재판관이 재판을 잘못하면 파면되듯이, 임금이 임금의 역할을 잘못하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왕의 논리에 의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상 군주 앞에서 군주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자칫하면 역모로 몰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맹자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맹자는 어떤 군주 앞에서도 군주의 잘못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군주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논리적으로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맹자의 학문이 깊고 지혜롭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맹자의 용기이다.
--- p.224~225, 「당당할 수 있는 용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