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큐레이팅은 그보다 뭔가 새롭고 색다른 것에 문을 열어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늘어만 가는 국제 비엔날레,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기관들, 낡은 기관들의 재단장이 한창인 와중에도 ‘뉴 큐레이터들’은 디자인에 관한 논의 조건을 마련해 줄 전시, 그리고 그와 관련한 출판물의 새로운 풍경을 묵묵히 만들어왔다.
--- p.13, 「서문」중에서
우리 시대의 복잡성과 불안정성을 표현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뉴 큐레이터는 다재다능한 실무자(practitioner)다. 즉 정부, 기관, 산업, 현장, 커뮤니티와 협업하는 학제적 실행 주체들의 중요한 매개자(connector)라고 할 수 있다.
--- p.20, 「머리말」중에서
수행적 큐레이션(performative curation)은 ‘신속한 큐레이션’, 즉 전통적인 박물관 맥락에서 오랜 기간 준비하는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프로젝트의 개념과 내밀하게 연결된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큐레이팅하는 과정의 핵심 요소는 실험을 포용하는 역량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험에는 실시간 테스트, 미완성된 ‘과정적’ 작업, 실패 가능성이 해당한다. 이 부분은 주류 기관들의 통상적인 큐레토리얼 실천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 p.25, 「머리말」중에서
큐레이션 그 자체가 변화하고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해요. 문화가 다른 경우라도 해야 할 일들의 상호 연계성을 더 긴밀하게 관리해야 하고요. 이 역할도 곧 변하겠지요. 당신이 말했듯이 모든 측면에서 협업하고 예상치 못한 영역에 돌파구를 내야 할 겁니다. 정말 근사한 일이죠.
--- p.40, 「동시대 디자인을 지역적/전 지구적 맥락에서 큐레이팅하고 수집한다는 것」중에서
전시의 역할을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전시를 연구와 제작 결과로 보는 관행적인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전시가 개막할 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뜻이에요. 전시가 시작점이자 촉매제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전시가 세상 속으로 움직여 가는 아이디어를 수용하게 할 것인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떻게 행동을 변화시키고 촉발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 p.93, 「포용과 다양성을 위한 메타 큐레이션」중에서
나는 큐레이팅이 어쩌면 이렇게 이론화되어 있지 않은지 놀라곤 해요. 큐레토리얼 행동주의와 큐레토리얼 행위성을 다룬 글은 많지만 ‘오늘날 큐레이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대단히 모호해서 이 질문부터 시작하는 편이 유용할 것 같아요.
--- p.214, 「잠재력을 큐레이팅하기」중에서
사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죠. 그렇지 않나요? …… 이 정교한 아이디어의 힘을 파악해 내고 관람객을 위해 그 아이디어를 번역해서 건축과 관련한 사람과 트럭을 몰고 지나가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일이죠.
--- p.218, 「잠재력을 큐레이팅하기」중에서
큐레이터의 노동이 몹시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어요. ‘큐레이터’는 일종의 지위를 제공하는 직함(label)이긴 한데 사실은 불안정한 지위를 부여하는 이상한 직함이죠. 막중한 압박감 속에서 끝도 없이 일하곤 해요. 대개는 장기 계약이나 변변한 급여도 없이 지적이면서 사회적인 기관과 매체를 전전하면서 활동해야 하고요. 큐레이터는 말하고 글 쓰고 연구해야 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그들의 향방을 잘 살펴야 하죠.
--- p.277, 「큐레토리얼 노동」중에서
새로운 큐레토리얼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답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대신에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있는데 지금은 그것이 흥미 있는 것 같아서 여러분과 나누고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얘기하고 싶어요.’라고 해야죠.
--- p.381~382, 「‘디자인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전시하기」중에서
큐레이터라는 용어 자체에 매우 유연한 특성이 있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것이 남용되어 모든 사람이 큐레이터가 되고 모든 것이 ‘큐레이팅’된다는 거예요.
--- p.397, 「남반구의 담론적 큐레토리얼 실천으로서 독립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