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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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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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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50g | 135*205*20mm
ISBN13 9791193239056
ISBN10 1193239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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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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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다고 해야 할까, 스산하다고 해야 할까. 한여름이었음에도 서울구치소의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빛이 들어오는 모든 창문엔 쇠창살이 달려 있고, 창 너머에서는 나무 냄새를 가득 품은 숲 바람이 불어왔다. 구치소는 늘 서늘하고, 좋은 바람이 불고, 아주 느리게 시간이 간다.
--- p.21

변호사가 하는 일이란 결국 누군가의 뒤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 형사사건을 많이 담당하다 보면 반듯한 사람보다는 살짝 비뚤어진 사람을 자주 만나고, 정직한 사람보다는 거짓말에 능한 사람을 많이 본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가진 밝은 구석, 좋은 에너지, 긍정적일 수 있는 미래를 들여다봐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 p.38~39

필로폰이 무서운 점은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우리 뇌의 도파민 체계가 망가진다는 점이다. 단약 후에는 두 번 다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필로폰의 엄청난 부작용과 중독성이 밝혀지자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필로폰을 마약으로 지정하고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럼에도 필로폰은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마약으로 유통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 p.59

아무도 그의 투약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혼자 사는 아들이 최근 들어 연락이 뜸해지고 예전처럼 집에 자주 오지 않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도 몰랐다. 그는 지각 한 번 하는 날이 없었고 일도 열심히 했다. 조금 피곤해 보여도 다들 그가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그가 속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 p.94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나 마약 사건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죄보다 사람을 더 미워한다. 그게 내 가족 중 한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마약 투약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어떤 태도로 자식을 대해야 할지 무척 혼란스럽다. 범죄자의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에 더해, 마약 투약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자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 p.101

우리나라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는 약물로부터의 격리 조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해주지 않는다. … 그저 마약 사범들을 형기를 채울 때까지 한 방에 가둬놓는 것으로 끝이다. 바로 그곳에서 마약 사범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현실을 보면, 구치소나 교도소가 오히려 마약 재범을 양성하는 기관이라고 비난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 p.110~111

자식이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자식의 단약과 치료에 매진했다. … 나는 상담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앉아서 단약 일기를 읽었다. 마음이 움직였다. J 본인의 단약 의지가 강했다. 그리고 그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가족이 옆에 있었다. 이 정도면 재판부를 설득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사실은 그저 J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의 부모님이 행한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 p.127~128

J는 재판부에 등을 돌렸다. 그는 방청석을 몇 초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방청석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의 부모님에게 마지막 진술을 했다. 그의 짧은 한 문장은 내 긴 변론보다 묵직했고, 재판정의 어수선한 소음을 뚫고 사람들의 귀에 가 닿았다. “저를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p.133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뉴스에 나오길 바라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길 바라는 수사기관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이에 근거한 피의사실 공표죄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연예인 마약 사건 수사에 대해서만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현실은 법조인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행태다.
--- p.142

변호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과 공생한다. … 물론 형사 법정에서 억울한 피고인을 위해 무죄를 주장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의사가 착한 사람만 골라서 치료하지 않듯 변호사들도 선한 피고인만 변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악한 본성과 옳지 않은 행동도 변호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변호사다.
--- p.157

그는 머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성실했다. 정말 ‘열심히’ 마약을 팔았다. 당시에는 생소하던 비트코인 구매 대행사를 이용해서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고안했다. … 소문에는 이십 대 초반인 그가 몇십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의 명성이 커질수록 유저들은 더 그를 찾았고, 더 많은 딜러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짧은 시간에 그는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거물이 되어 있었다.
--- p.166

나는 수십 번이나 기록을 다시 뒤져보며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검찰이 제출한 자료 가운데 M이 해당 건물에 다녀갔다고 지목한 시점과 경찰이 드랍지에 숨겨진 마약을 수거한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있음을 발견했다. 수사기관의 주장대로라면 드랍 장소에 마약이 일주일 이상 보관돼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 p.213

훌륭한 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의뢰인에 대한 ‘공감과 믿음’일 것이다. … ‘덕목’이란 우리가 꼭 갖추고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갖추기가 어렵고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 신념은 곧잘 부러지고, 초심은 잃어버리기 쉽다.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나는 ‘공감과 믿음’이 무뎌짐을 느낀다. 어떤 날은 의뢰인을 의심하거나 쉽게 평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그러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이 엄습한다.
--- p.217~218

실제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도 유죄의 증거를 탄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면 변호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의뢰인의 말을 믿고 무죄를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의뢰인을 설득해서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받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할 것인가. 재판부에서 무죄 주장 자체를 양형에 불리한 요소로 보는 현실에서 변호사의 선택은 대체로 후자가 된다. 그 결과 피고인과 변호인은 적극적으로 변론하는 것을 망설이고 소극적인 변론에만 머무르게 된다.
--- p.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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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만큼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직업이 있을까. 생생한 이야기 안에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통찰이 가득하다.
- 손수호 (법무법인 지혁 대표변호사, 『사람이 싫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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