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기업인은 물론 모든 지도자들에게는 생각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색의 시간이 빠진 공간에서는 어떠한 좋은 판단도, 결정도 나올 수 없다는 유일한 박사의 그 깊은 뜻을 지금은 알게 된 것이다. 오늘 책상머리에 앉아 당신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던 당신의 당부를 생각한다.
---「생각의 신」중에서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그는 회사에 들어온 가족이나 친인척이 파벌을 형성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한 박사는 결국 1969년,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을 홀연히 떠나셨다. 회사는 창업주 가족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경영자가 맡아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실천한 것이었다.
---「중대한 책임이 부여되면 인간은 성장한다」중에서
유일한 박사는 창업 당시부터 세 가지 경영의 원칙을 세웠다.
첫째,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든다. 둘째, 정직하게 세금을 낸다. 셋째, 기업을 경영해서 얻은 이익은 기업을 위해 일한 직원들과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돌려준다.
---「카네기의 토끼풀과 유일한 박사의 숙주나물」중에서
나는 또한 취임사를 통해 신제품 개발과 시스템 경영 등 경영혁신을 통해 ‘새 유한 건설’, ‘새 유한 도약’, ‘새 유한 창조’ 등의 의욕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제약업계 1등 선도회사로 도약하자고 당부했다.
---「1988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중에서
‘유일한 정신’에 기초하여, ‘유한양행 전문경영자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유한양행 대표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설정하는 혁신적인 인사원칙을 확립했다. 다시 말하면, 유한양행의 임원은 ‘3년+3년 임기제’로 못 박고, 나아가서 대표이사가 물러나기 1년 전 차기 대표이사 후보의 임명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는 유일한 정신을 계승하여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유한의 전문경영자 시스템’」중에서
유한양행의 3대가 모두 유한양행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사회사업이나 국가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유일한 박사의 유일한 정신과, 유한양행의 선진 지배구조 시스템은 보다 깊이 학문적으로 분석해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 경제사회에 알려나가고자 한다.
---「유재라 여사와 나눈 너무나 인간적인 대화록」중에서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한다. 오랫동안 유일한 박사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이제 그 꿈을 닮아감으로써 마침내 ‘리스펙트 유일한’을 ‘사바 세계’에 내놓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한 100주년을 앞두고 유일한 박사가 철통같이 당부하신 유한의 선진 거버넌스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기의 추억」중에서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정직’이라는 두 글자로 인해 훗날 내가 유한양행에 들어가서 유일한 박사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었으니, 어머니야말로 나를 유한양행으로 인도하고 유일한 박사를 만나게 해주신 ‘전도사’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인도하신 정직한 인생길」중에서
오늘과 같이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는 ‘가진 사람’들의 기부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하면서 “감사를 갚는 최선의 방법은 기부”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이제 유한양행과의 62년 인연에 마침표를 찍기에 앞서 나 자신의 감사의 마음을 기부를 통하여 실천해왔고, 유일한 박사를 모시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한 것일 뿐이다. 역시 기부는 인간을 성장시킨다.
---「감사를 갚는 최선의 방법은 기부」중에서
“제 인생에는 세 번의 큰 운명적 만남이 있었는데,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정직’, 둘째는 유한양행 입사로 맺어진 유일한 회장과의 운명적 만남, 셋째는 고대 입학으로 맺어진 운명적 학연이었습니다.”
---「부록: 한국의 경영자 명예의 전당 추대 인터뷰 기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