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주 악한 사람도, 아주 선한 사람도 없다. 상황이 나와 맞으면 좋은 사람이고 맞지 않으면 나쁜 사람일 뿐이었다. 박 씨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늘 열심히 일했고 밭에서 기른 상추나 토마토 등 작물을 주위 사람들과 흔쾌히 나눌 줄도 알았다. 사회성도 좋을뿐더러 착실했다. 무엇이든 열심이어서 어디에 갖다 놓아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사람이었다. 다남동 산기슭에 펼쳐진 밭을 경작하는 가가호호 사람들은 그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였다.
---「박 씨의 돌」중에서
낭만적이고 한유한 시간이었다. 그의 일탈 행위를 보기 전까지는. 흩날리는 개복숭아 꽃잎들과 텃밭에 가득한 쪽파 향이 어우러져, 무르익음이 절정에 도달한 풍경이었다. 아일랜드의 초록이 가득한 벌판이 생각났고 홍등이 도시 전체를 밝혔던 중국 어느 도시의 에로틱했던 저녁도 떠올랐다.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느꼈던 여유로움은 그의 광기 어린 돌발 행동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덕경원의 봄」중에서
혜경은 살며시 남편의 손을 잡았다. 하얀 면장갑을 통해 느껴지는 투박함이 익숙하고 편안했다. 손에 힘을 주는 남편의 손길이 느껴졌다. 의구심에서 불통의 고통에서 관망과 묵인에서 이해와 관용까지 가기에는 참 많은 세월이 지났다. 갈등과 화해가 반복된 지난한 과정들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삶이라는 것은 질긴 생명력을 동반하고 있어서, 매일, 이곳이 감옥임에 틀림없어, 하는 고통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여행 중 보았던 호화로운 생일파티가 아니어도 어깨를 나란히 앉아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협궤열차」중에서
“이곳의 높이를 기준으로 해서 산이나 건물의 높이를 말하는 거야. 비행기의 고도도 마찬가지이고. 세계의 어느 곳이든 지형의 높이가 통일되어 있잖아. 나라마다 기준 원점으로 높이를 책정하기 때문이지. 우리나라의 기준 원점은 바로 저 대리석의 높이야.” 모든 것에 기준이 되는 점. 그것이 있기에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산의 높이를 알 수 있었고, 비행기의 고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이 시간 아버지도 유럽 어딘가의 하늘을 날며 고도 계기를 확인하고 계시겠네. 기상 레이더를 비교하고 자동조정 장치를 조절하시겠네. 그런데 아버지, 우리 가족은 지금 관제탑과 교신이 되지 않은 지 오래라는 거 알고 계시죠?
---「기준 원점」중에서
오늘내일하는 아내와, 갈 날이 머지않은 자신의 묏자리를 찾는다며 우기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나 아들들에게 내세운 이유에 불과했다. 썩어버릴 몸을 묻어두는 장소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묏자리 같은 것은 팔자 편한 이들의 관심거리일 뿐, 달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정신을 놓고 떠나면 그만인 이승이었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 하며 훌훌 털고 가려니 한 가지 문제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질 두 아들이었다. 달묵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서로 엉켜 처음과 끝의 가닥을 찾을 수 없는 인생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명치가 뻐근했다.
---「왕버드나무」중에서
늘 떠나려고 하는 지원에게 남편이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계속 떠나려고 해?”
이런 물음에는 답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답 없는 그녀에게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디를 가려는 게 목적이 아닌지도 모르지. 나를 떠나기 위해서라면 내가 떠나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실은 나는 나를 떠나고 싶다고, 그런데 그렇게 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어디로든 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진심이 때로는 타인의 마음에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고별」중에서
여자는 멀리 보이는 집을 가늠해보고 숲으로 들어섰다. 뭉클한 땅의 촉감이 전해졌다. 밟힌 여린 풀들과 나뭇잎이 바삭거렸다. 여자는 숲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숲에는 길이 없었다. 걸을 때마다 구두 굽이 부드러운 흙을 파고들었다. 쉽지 않은 걸음이었다. 여자는 인터뷰를 위해 정장용 구두를 신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숲을 가로질러 간신히 노인의 집에 도달해 보니, 포장된 길이 집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여자는 길가에 덩그러니 세워놓은 작고 낡은 그녀의 차를 잠깐 떠올렸다.
---「마지막 인터뷰」중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알면 억울하다거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힘든 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음모론도 믿지 않게 된다. 오직 통계에 따른 확률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런 확률적 계산을 좋아한다.
---「스펙큐레이트 1」중에서
나는 긴 여행 중이었다. 가방을 싸고 풀고, 비행기나 크루즈를 타는 물리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이 여행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신비스러운 기류가 감돌았다. 옆 라인에 사는 친구 집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주변과 잘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왠지 겉도는 느낌은 가족들의 공통된 정서였다. 성장한 후 그때는 소녀의 사춘기적 감성이었을 것이라고 에둘러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세상을 접하면서 점차 분명해졌다. 이제는 그를 도암 스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나 어디에나 있는 듯 느껴지는 그는 지금도 이곳에 머물고 있을까.
---「밍글라바」중에서
바라나시는 많은 종교가 얽혀 있듯 삶과 죽음 또한 맞물려 교차했다. 어느 가트에서는 축제가 열렸고, 다른 가트에서는 행려자나 병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또 다른 가트에서는 죽음의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동시에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검보다 그들 곁에 존재하는 삶이 은밀하고 비밀스러웠다. 주검을 받아들이는 표정에는 슬픔이 존재하지 않았다. 삶도 죽음도 모두 열어놓은 세상이었다.
---「먼 길, 먼 집」중에서
첫 소설집을 내고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돌의 침잠처럼 침묵으로 일관된 일상이었다. 허리디스크와 코로나19가 찾아온 무렵은 소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3년이 넘는 세상과의 결별은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긴 터널을 지나며,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렸다. 농사일도 제법 익숙해져 계절마다 심고 거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소설 쓰기가 이렇게 손에 척척 붙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수확의 기쁨을 느끼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기에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오래 사랑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