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이라는 웅장한 뷔페가 제공하는 수많은 식탁과 음식 및 음료 코너를 최대한 들러 보고자 지난 학기를 쉬었다. 나는 그 뷔페가 그토록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인 줄 몰랐다. 그토록 영광스러운 동시에 비참한 곳, 영웅적인 동시에 슬픈 곳인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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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순간을 살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미래나 과거를 보려 들지 말고, 그 모든 걸 더해 보지도 말고, 현재라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과일을 맛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인간은 그 순간에 머물게 된다. 중독자처럼 자신을 속이고 포기해 버린다. 그 모든 달콤함이 썩는 것 외에는 아무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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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은 어떤 선언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선언이라도 말이다. ‘이게 나의 유일한 삶이고, 난 이 삶을 살아 낼 거야.’라는 선언.
--- p.120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 내 인생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야.
--- p.194
나는 퐁의 충직한 후배이자 새로운 친구로서 다시 조율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열쇠의 홈에 신선한 날이, 더 선명하고 뚜렷한 날이 찾아온 듯했다. 뜻밖에도 재미있게 쓰일 준비가 된 채로. 정말로 원한다면, 우리는 모두 마스터키 아닌가?
--- p.355
지금의 나는 어느 장소를 떠올리면 반드시 그곳의 향기를 함께 떠올린다.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늘 그렇게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던바처럼 평범한 지역에도 향기가 있다. 던바는 보통 차가운 버터 덩어리처럼 전혀 냄새가 나지 않지만, 떼 지어 마을을 포위한 조경사들이 방금 깎은 풀 냄새와 투 스트로크 엔진의 알싸한 배기가스로 공기를 습하게 만들 때는 예외다. 대학교의 오래된 참나무 책상 서랍을 열면 피어오르는, 먼지 낀 곰팡이 냄새와 말라붙은 맥주, 빨지 않은 플리스의 냄새. 앞서 말했듯 오아후섬에는 은하수처럼 펼쳐진 탁 트인 푸른 바다라는 필터를 수 킬로미터나 거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선전의 거리에서는 젖은 아스팔트와, 억제할 수 없는 지하의 하수도 냄새가 난다. 마카오에서는 과열된 카지노의 조명과 쏟은 화이트 러시안과 네니타의 냄새, 그리고 뭐, 뻔한 냄새가 난다. 그 모든 건 영원히 기억에 남아 있다.
--- p.427
나는 나 자신을 그냥 그녀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냥 찰흙이 되고 싶었다. 퐁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했던 말처럼, ‘신발 뒤축에 묻은 흙먼지’처럼 말이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 p.451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한 번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보다는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오래 할 수 있는 걸. 계속해서 오래, 아주 오래 공기를 꿰뚫을 수 있는 음을 낸다든지.
--- p.454
그런데도 이게 내 운명인 걸까? 좀 더 눈물이 나는 형태이기는 해도? 아니면 고통이 곧 쾌락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니지만 고통이 나를 데려갈 수 있는 막다른 지점에, 내가 불가결해지는 영역에, 누군가의 어두운 꿈이라는 기계 속의 핵심적인 톱니바퀴가 되는 지점에 끌리는 걸지도 몰랐다.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느니 어둠에라도 속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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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어, 틸러. 일종의 허기가 있지.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
--- p.467
나는 바다에 붙어 조류에 휩쓸리는 단 하나의 조개였다. 고립되었다가 물에 잠겼다가 거친 파도에 두들겨 맞았다가를 번갈아 겪다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온전히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았다.
--- p.603
나는 우리가 수확을 걱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씨앗을 심기를 바란다. 그 식물들이 우거지기를. 수확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수확은 우리가 함께 땅을 일구는 데,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데, 우리의 나지막하고 음악적인 콧노래에, 활기차게 먹고 마시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수확은 무작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 예컨대 빅터 주니어가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쌓아 올릴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둔 머랭이나 밸이 베개에 남기는 따뜻하게 움푹 팬 자국, 플란넬 천 깊숙한 곳에 붙은 그녀 머리카락의 고소한 냄새 같은 것들에서 어느새 형태를 갖춘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역으로 작용하는 연금술이라도 된 것처럼 사라진다. 그 모든 생명의 황금이 흩어져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세상에 맞게 나 자신을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이야말로 나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세상이다.
--- p.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