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는 역사상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철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장 잘 이해되고 있는 철학자의 한 사람은 아니다. 신화나 소문들이 항상 그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그의 성생활이나 정치학, 그리고 정신 건강에 관한 것이고, 대부분은 그의 철학적 핵심들-'권력의지', 종교와 도덕에 대한 공격, 그리고 그 악명 높은 초인-을 깎아내리는 것들이다. 니체가 진정으로 말했던 것은 거짓과 오해, 과장의 미궁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매혹적인 작가임에 틀림없고, 매우 흥미진진하고 통찰력이 깊은 사상가여서 우리가 정말 이해하고 다루어볼 만한 사람이다.
<머리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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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주장은 잔인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온건한 목적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공상적으로 만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도록 하고 있으며, 삶이 설령 아주 추악하 경우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찬미하도록, 그리고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장 음흉한 쾌락과 충동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고통을 다루는 구절들 뒤에서 니체가 진정으로 찬미하는 것은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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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대학 시절에 이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에서 하나의 주제다. 결국에 쇼펜하우어로부터 돌아서기는 했지만, 니체는 실재로 세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를 결코 떨어내지 않았는데, 몇 가지 요소들은 니체 철학의 핵심에 여전히 남아 있다. 가령 권력의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변형시킨 것이다. 특히 니체가 (권력)의지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배후에, 심지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충동이라고 말할 때 쇼펜하우어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
쇼펜하우어는 세계 '그 자체(물 자체)'-이것은 칸트가 이론화한 개념이다-는 역동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힘이며, 이 힘이 우리 경험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가정했다. 이 근본적 실재성, 즉 의지는 자기 자신과 계속적인 투쟁을 벌였는데, 이 투쟁은 현상적 본체들 사이의 긴장 안에서 드러난다. 전쟁이나 적대뿐 아니라 먹이사슬에서도 우리는 이 투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비록 니체의 권력의지 개념이 어떤 면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닮기는 했지만, 니체는 이 개념을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개선시킨 것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이 점을 나중에 제7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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