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 끝나기 몇 달 전부터 시작도 하지 않은 전셋집 구하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 집을 구해준 부동산 사장님을 길에서 만났다. 사장님을 만나자마자, 전셋집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장님! 저 전세 계약이 끝나서요. 집주인이 연장을 안 해준다고 하고…. 좋은 집 있으면 연락주세요.”
자, 이 상황에서 부동산 사장님이 나에게 한 말은 놀랍게도, “집을 또 구해? 왜 시집을 안 갔어? 2년이나 있었잖아.”
2년 전, 몇십만 원의 중개 수수료를 내고 전셋집을 구했는데, 나는 그게 전세 계약인 줄 알았지, 결혼 유예 연장 계약인 줄은 몰랐다. 부동산 사장님이 2년이나 결혼할 수 있는 기한을 줬는데, 내가 계약 내용을 오해했었나? 말문이 막힌 나는 대강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다신 저 부동산에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왜, 혼자 살아요?」중에서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이런 모든 조치를 조롱이나 하듯이 그가 침실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에도 체감 크기는 나와 동등한 수준이었고 아무리 작게 보고 싶어도 스타벅스 커피잔만 했다. 이번엔 문을 닫고 나가 버릴 수가 없었다. 침실만은 사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손에 잡히는 스프레이를 뿌렸다. 용감하게 맞선 나의 손에 들려 있었던 건 해충을 흥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비오킬이었다. 그 말은 즉 당장 그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나의 공격에 더 자극을 받아 날개를 펼쳐 날기 시작했다. 세상에, 잠은 꼭 집에서 자야 할까? 이제 내 집이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을 물리쳐라」중에서
“고양이는 잘 지내요”
이 안부 인사를 자주 듣는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잠시 맡아본 적도 없다. 고양이가 ‘혼자 사는 30대 싱글 여성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집 밖에 잘 안 나가는 이유가 고양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종종 내 집에 고양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도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혼자 사는 여성과 고양이의 상관관계」중에서
싱글들은 언제 제일 결혼하고 싶냐는 질문을 영원히 받는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그러니까 한 국가의 수장이거나, 영웅이거나, 대단한 그 무엇이라고 해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갈 단 하나의 질문은 정해져 있다.
“언제 제일 결혼하고 싶으세요?”
나라고 피할 수 있겠나. “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고 어두울 때”라는 대답을 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그보다는 장바구니에 잠들어 있는 에어프라이어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더 솔직한 대답이 될 것 같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에어프라이어로 감자를 튀기는 일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지만 말이다. ---「혼자로는 힘들 때」중에서
완전히 지쳐 집에 돌아와서 밥 차릴 힘도, 씻을 힘도 없어 외출복 차림 그대로 한참을 소파에 누워 있을 때가 있다. 나의 엄마는 이렇게 지치는 날에도 대가족을 돌봤다. 나는 나 하나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엄마, 난 나 하나 챙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우리 셋을 키웠어?”
엄마는 이 질문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너희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어.”
엄마는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이 작은 여자가 나를 키웠다. 얼굴도, 키도, 체형도, 우리는 모두 비슷하니까 아마 그 씩씩함도 내 몸 어딘가에 들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힘으로 날 잘 먹이고, 키우고, 돌봐야지. 좋은 결심이긴 한데, 엄마가 바라는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엄마, 불효자는 오늘도 잘 지냅니다. ---「불효자는 잘 지냅니다」중에서
국민연금 수령 여부는 미지수고, 복지 혜택을 받을 날도 요원해 보이는데, 지금은 젊으니까 괜찮을 뿐이라고 속삭이는 어둠의 목소리까지 듣는다. 이때, 유일하게 희망을 주는 건 혼자서도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흠모하는 주변 여성들, 호감을 가지고 온라인에서 지켜보는 여성들은 이 모든 불안을 안고 있음에도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돕고, 멋지게 요리를 하고,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유머를 잃지 않는다.
자주 여행을 함께 떠나는 가까운 친구와 언젠가 ‘생활 동반자법’이 통과되면 한 집에 살거나 가까운 곳에 살며 노년을 함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혼자 살기가 계속된다면 불안을 웃음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새로운 삶의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지금은 젊어서 괜찮지」중에서
부엌에서의 가사 노동은 싱크대 앞에 서서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뭘 살까’, ‘뭐가 남아 있나’, ‘뭘 또 주문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아무리 부모님 집에서 집밥을 먹고 매번 설거지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부엌에서 일어나는 가사 노동의 반의반도 아니었다는 걸, ‘반찬 다 사다 먹는데 뭐가 힘들어’, ‘요샌 인터넷에 다 팔잖아’ 이런 말들은 가사노동의 중심에 서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는 걸 나 스스로를 키우면서 깨닫는다.
---「밥은 먹고 다니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