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데뷔한 BTS가 다음 해까지 발표한 초기 앨범들을 보통 ‘학교 3부작’이라 부릅니다. 10대 청소년 눈높이의 고민과 관심거리를 담았기 때문이죠. 학교 시리즈 가사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No More Dream〉과 〈N.O〉에서 이야기하는 기성세대 질서에 대한 반항과 자신의 꿈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상남자〉와 〈호르몬 전쟁〉에서 이야기하는 이성을 향한 관심과 호감입니다. 보통 10대 팬을 주 대상으로 삼는 아이돌 음악 시장에서는 흔한 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데뷔 당시 실제로 10대 후반 또는 10대를 갓 지난 나이였던 BTS 멤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만큼 의미 있는 주제들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청소년기에 부딪히는 고민과 과제는 누구나 비슷하기 마련이거든요. 청소년기뿐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나고 죽기까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사정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의 갈래를 ‘발달심리학’이라고 합니다.
---「1장 세상과의 충돌_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어?」중에서
‘학교 시리즈’ 이후 BTS는 2015년에서 2016년까지 ‘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또는 ‘청춘 시리즈’라 불리는 미니앨범 두 장과 정규앨범 ‘WINGS’까지 발표하며 숨 가쁘게 활동합니다. 이때 앨범의 주제는 모두 ‘사랑’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사회 비판이나 자기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수록곡들이 있었지만, 타이틀곡은 모두 사랑, 그것도 아주 슬프고 아픈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2015년 발표한 〈I NEED U〉와 〈RUN〉에서는 자기 마음처럼 되지 않아 괴롭지만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2016년 발표한 〈피 땀 눈물〉에서는 더 나아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중독과 같이 파괴적인 사랑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사실 아픈 사랑 이야기는 모든 예술에서 가장 흔하지만 또 먹히는 소재입니다.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도 팔리고 또 팔립니다. 막 청소년기를 끝내고 어른들의 보호를 벗어나 세상에 홀로 서게 된 청춘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가 사랑이니, BTS가 ‘학교 시리즈’ 이후 시점에서 연애와 사랑을 주제로 삼았던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요? 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걸까요?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연애에 큰 관심이 없고, 가치를 두지 않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다른 이들과 충분한 관심과 돌봄을 나누지 않고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이성과의 사랑이 그중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될 뿐,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충분한 사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사랑이 고프면 이성을 잃고 파괴적인 행동까지 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목이 말라 죽겠으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물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는 욕구, 이른바 ‘동기’들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의 갈래를 ‘동기심리학’이라고 합니다.
---「2장 나를 사랑해 줘!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너」중에서
나의 이상형은 실은 내가 찾아야 하는 또 다른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나의 아니마/아니무스를 투사하면 정말 목숨을 바쳐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실은 그 사람에게 비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니 목숨을 바친대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아니마/아니무스는 꼭 연인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혼란스런 세상에 던져진 내게 속 시원한 답을 주고 또 그렇게 나를 완성시켜줄 것이라 믿는 무언가, 그래서 푹 빠져 나를 불태우고 바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아니마/아니무스 투사의 대상이 됩니다. 실제로 종교, 이념, 사상 등에 빠진 사람의 열정은 연애하는 사람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래서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DNA)’, ‘내 모든 wonder에 대한 answer(HER)’ 같은 가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나 나의 아이돌에 대한 열광도 여기에 속합니다.
---「3장 사랑의 비밀_운명일까,기적일까」중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해내는 것은 좋지만, 어떤 역할이라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양한 모습, 즉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모든 것들을 나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가면 뒤의 진짜 내 모습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두꺼운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물론 진정한 사랑은 가면 뒤의 모습까지 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내 모습을 찾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 … 난 날 속여 왔을지도 뻥쳐 왔을지도 But 부끄럽지 않아 이게 내 영혼의 지도’ 라는 〈INTRO : PERSONA〉의 가사는 페르소나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페르소나 말고 또 하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건 페르소나보다 더 다루기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그림자’라는 존재입니다.
---「4장 왜 내 마음은 하나가 아니지?_페르소나와 그림자」중에서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내가 보통 그냥 ‘나’라고 생각하는 의식 속의 나, 즉 ‘자아(ego)’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페르소나, 그림자, 콤플렉스, 아니마/아니무스 등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본 여러 복잡한 면들을 들여다보고, 그 모든 면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 즉 ‘자기(self)’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를 ‘자아통합’ 또는 ‘자아실현’이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다른 심리학 이론이나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융은 특별히 ‘개성화(individuation)’라는 말로도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나의 인격을 완성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의 개성을 찾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멋진 누군가를 닮거나, 세상의 기준이나 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BTS의 노래들에도 이런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처음 마주하여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그려낸 ‘WINGS’ 앨범의 수록곡 〈REFLECTION〉에서는 그런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면서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은 희망을 노래하며(‘나는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 매일 반복돼 날 향한 좋고 싫음’) 앞으로의 주제를 예고했습니다. 이어 3장과 4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맹목적인 사랑으로 인한 아픔을 거쳐 우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LOVE YOURSELF’), 좀 더 깊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여(‘MAP OF THE SOUL’) 마침내 자아통합과 개성화의 기쁨을 노래하게 됩니다.
---「5장 내 마음의 지도 그리기_진짜 나, 진짜 사랑」중에서
물론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성향은 왜 서로 다른지, 또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인 ‘성격심리학’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아는 누구의 성격이 좋다, 나쁘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실은 성격은 모두가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분명 있지만 그것은 성격이 아닌 ‘인격’이나 ‘정신적 건강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격이나 정신 건강이 괜찮은 사람들이라도 성격은 제각각인 법이거든요.
성격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이 모두 다른 이유는 다양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몸의 생김새와 기능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게 많습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사람의 몸에 털이 적은 이유는 맹수가 주로 활동하는 밤 시간을 피해 낮에 주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랍니다. 원시 인류가 처음 나타난 곳은 아프리카 지방이라 낮에 몹시 더웠으므로 체온 조절을 위해 털이 적은 편이 유리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털이 없는 부위의 땀구멍에서 수분을 빨리 증발시켜 체온을 낮출 수 있으므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운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지만, 뛰어난 지능과 손재주로 털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었죠.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털이나마 추울 때는 바짝 세워서 체온을 보호하는데, 이것이 소름(닭살)이 돋는 원리입니다.
---「6장 너와 나는 다르지만 서로 연결된 우주_누구도 잘못된 존제가 아니며 홀로 된 존재도 아니라는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