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일기
--- 이지영 (blog.yes24.com/jylee721)
온라인 연재 만화를 엮은 책이 대단한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카툰집들이 출간되던 때, <하루일기>를 처음 읽은 것도 그때였다. 당시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표방한 카툰 에세이들에 좀 질려 있었는데, 늘 좋은 말만 하고, 늘 외로움에 젖어 있는 주인공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뭐가 그리 외롭고 힘들어. 혼자여도 씩씩한 주인공은 없나. 그렇게 투덜대던 차에 발견한 것이 이 책, <하루일기>다.
한 권의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까지, 그 뒤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책의 내용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책을 읽던 시기의 개인적인 상황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서일 수도 있다. 내 경우 <하루일기>는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린 만화였던 것이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 먹으며 편하게 살아온 주제에 그녀의 자취생활에 이상하리만치 크게 감정이입을 했던 이유는 그녀가 '혼자서도 잘 하는 씩씩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혼자 살아본 적 없는 내 삶에 일종의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 나가야만 한다고, 나가겠다고, 독립을 부르짖으며 부모님과 부딪히길 수차례. 그런 나에게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는, 씩씩한 생활인인 그녀가 유달리 마음에 들어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혼자 사는 여자를 대할 때, 사람들은 보통 그녀가 느낄 법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호기심을 보이며 묻곤 한다. 외롭지 않아요? 무섭지 않아요? 외롭겠지. 또한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외롭거나 힘들어도 씩씩하게 살아갈 것. 이 과제는 비단 혼자 사는 여자들만의 과제는 아니리라.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이 느낌이 잘 배어 나오는 일화가 하나 있다. 비 오는 날 부침개라도 부쳐먹을까 하여 동네 가게에서 밀가루를 샀는데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밀가루 사는 사람이 많네' 하셨다는 이야기.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서 아는 친구들 다녀간 것 같은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는 그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섬세한 '생활의 발견'이다. 외롭지만, 그런대로 외롭지 않은, 즐거운 생활의 발견.
별명이 '어두워'일 정도로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그녀이지만, 그 별명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만큼 낙천적인 성격의 그녀. 작은 일에 상처 받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맥주 한 잔에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곤 하는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여자가 나뿐만은 아니리라.
작년에는 <하루일기> 2권도 출간되었다. 1권이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면, 2권은 결혼 후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2권이다.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지금의 일기에는 그런 날들을 지나온 사람의 속 깊은 여유가 담겨 있다.
2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어린 시절에 얽힌 추억담. 겨울엔 집에 올 때 일부러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차갑게 얼렸다는데, 그렇게 하면 엄마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 따뜻한 이불 속으로 넣어주셨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자신은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시는 엄마의 손을 한번도 잡아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그것 말고도 눈 오는 날 창문 열고 좋아라 하니까 엄마가 추우니까 나오지 말라며 쓰레받기에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서 창에 올려주셨다는 얘기도 좋았다.
지금 그녀는 좋은 사람과 만나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녀와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