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부린이, 요린이는 주식의 ‘주’, 부동산의 ‘부’, 요리의 ‘요’에 어린이의 ‘린이’를 합친 단어이다. 잘 속고 요령이 없으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괴로움에 빠져 있어서 좀 더 배워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일이 서툰 초보를 어린이에 빗대는 말이 뭐가 어떠냐고, 더 배워야 하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어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처럼 비유하는 말과 생각에는 어린이가 약하고 미숙하며 부족하다고 깔보는 아동 차별적 인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저 주식 초보, 부동산 초보, 요리 초보라고 부르면 된다.
--- p.50, 「어리다고 차별하고」 중에서
‘틀딱’이라는 말에는 참으로 비인격적인 사고가 개입되어 있다. 이 말은 주로 노년층을 차별하는 상황에 쓰인다. 치아가 망가지고 성치 않아서 틀니를 착용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서러운데 왜 남에게 그처럼 험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비하의 대상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부모에게 틀딱이라며 못 할 말을 할 것인가. 틀니 때문에 식사할 때 딱딱 소리가 나는 것이 그리도 싫은가. 좀 듣기 불편하더라도 그 고충의 당사자는 어떻겠나 생각하며 참을 수는 없는가.
--- p.59~60, 「늙었다고 차별하고」 중에서
‘미망인(未亡人)’은 ‘아닐 미, 죽을 망, 사람 인’으로,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다. 남편과 달리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여필종부라는 유교식 사고의 영향으로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서려 있는 것이다. 과부라는 표현 대신 사용한 말이라고는 하나 높이는 말은 전혀 아니다.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뜻을 표현한 것뿐이다.
--- p.69, 「모르며 차별하고」 중에서
흔히 ‘성차별!’ 하면 여성 차별을 많이 떠올리지만 남성도 차별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한 남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옷차림에 관심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옷을 멋있게 입을까 신경 쓰곤 했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본 대로 티셔츠 앞쪽을 바지 안에 넣고 뒤쪽은 빼서 입고 교회에 갔다. 그러자 어른들이 티셔츠 앞부분만 넣어 입는 것은 “여자애들이나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학생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티셔츠 앞쪽을 바지 밖으로 꺼냈다.
--- p.77~78, 「알아도 차별하고」 중에서
‘국평오’는 ‘국민 평균 수능 등급 9등급 중 5등급’을 줄인 말로, 우리가 우리나라 국민을 자조적으로 지시할 때 쓰인다. 국민이란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사는 다른 모두를 포함하는데, 자신만 지시하는지, 남을 지시하는지, 아니면 모두를 지시하는지가 문맥에 따라 모호하다. 9단계 중 5등급이면 중간 정도인데 중간이 왜 나쁜가, 그리고 왜 등급을 운운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말이기도 하다
--- p.132~133, 「자조적으로 차별하고」 중에서
우리는 ‘결정 장애’라는 말도 많이 쓴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주저하며 시간을 끄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들으면 매우 적절치 않은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결정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 장애라면, 장애를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그러나 장애는 부족하고 열등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하자” 같은 표현도 “인생의 걸림돌을 극복하자”로 바꾸면 좋을 것이다.
--- p.165~166, 「우리는 왜 차별하며 살았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