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 “그래서 너희가 보고 싶었어. 내 청춘을 잃어버렸다, 이젠 없다는 사실보다 한때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어.”
수민 “지희야, 네가 뽑은 인생이란 제비뽑기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정은 “인생이 제비뽑기라고 하면, 딱 한 번 뽑는 게 아니더라고. 순간순간 계속 뽑아. 뽑고 또 뽑아서 다 더해. 그 합이 인생이야.” --- p.17
차유진 “남편이 병원에 누워 있던 6년 동안 단 하루도 두통약이 없으면 살 수가 없었는데, 단 하루도 두통이 멈춘 날이 없었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어느 날 알았어요. 나한테서 두통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래서 울었어요. 어린애처럼 주저앉아서 하루 종일.”
이석호 “…….”
차유진 “그게 참 미안하더라고요. 그래도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두통이 사라졌다는 걸로 깨닫다니. (피식 웃고 난 후) 이런 게 인간일까 싶고, 이런 게 사는 걸까 싶고. 그래서 울었어요. 하루 종일.
이석호 “…….”
차유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나중에 나처럼 울지 않으려면.” --- p.34, 고재귀 작 「두통」에서
소녀 “난 그런 눈빛 잘 알아요. 아까 사람들이 날 쳐다보던 그 눈빛. 가끔 우리 엄마도 날 그렇게 보거든요. ‘그렇게 막살 거면 너도 그때 그냥 죽어버리지.’”
여인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소녀 ”솔까 아줌마도 속으로 그랬잖아. 이 양아치 말고 은호가 살았더라면.“ --- p.120
우주인 “깜깜한 우주에 홀로 있으면 문득문득 제가 제 비참함에 얼마나 매달려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제 비참함은 곧 분노로 바뀝니다. 하지만 제가 분노를 불사르는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어느 순간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다가 왜 그랬는지 잊어버리게 하는 힘이 저는 놀랍습니다. (장형구에게) 기분이 우울해 보이네.
장형구 “뭔가를 잃었어요.
우주인 “찾게 될 거야. 또 잃을 거고.”
장형구 “다들 어디로 가는 거죠?”
우주인 “몰라.”
장형구 “아저씨는 거기에 왜 갔어요?”
우주인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 pp.228-229
메텔 “은하 시계의 투쟁을 결정하는 계시에 따르면, (분연히 일어나) 국가 기반 시설이 마트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 더 이상 내란의 타깃조차 되지 못하며, 국가의 모든 권력이 댓글에서 나올지라도, 도시 한복판에 백만 개의 불꽃이 타오르면, 그때!
철이 “그때! 은하철도 999가 온다고 했어요.”
역무원 “아, 정말…… (기가 차다.) 정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나도! 나도 힘들다고요.” --- p.261
미래 “저 없어져서 난리 났던 날이요. 딱 10분만 산책하려고 나간 건데. 언덕에서 저 펭귄을 만났어요. (무대 바깥, 펭귄 쪽을 가리킨다.) 젠투펭귄. 어, 겨울나러 다 떠났는데 얘는 뭐지? 따라가다가 나레브스키 포인트까지 갔어요. 펭귄 마을. 달랑 쟤 혼자 마을에 있었어요.”
석기 “그래서 뭐? 펭귄이 어쨌다고?”
미래 “둥지를 만들고 있었어요. 돌멩이를 주워 와서 그 위에 깔고 앉아 바다를 봤어요. 무너지는 빙벽과 빙산을 쳐다보는데, 정말 지금 선배님 모습 같았어요. 이 세상 마지막 풍경을 보는 사람처럼.” --- p.306
태현 “꽤 잘했어요, 나. 전국에 있는 자동차 영업사원 중에 나처럼 꾸준하게 매년 3백 대 이상 파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게 다 거짓말 게임 덕이에요. 거짓말은 넘쳐나니까.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휘슬 소리를 듣는 거예요. 언제 이 게임이 시작되는지, 언제 거짓말이 시작되는지 알아차리는 거.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인간들이 나한테 대형 세단 견적을 물어봐요. 마치 당연히 그 차를 사기라도 할 것처럼, 살 수 있는 차가 아니라 사고 싶은 차의 견적을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내 머릿속에 휘슬이 울려요. 게임 시작. 나는 여기저기서 그 사람이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죠. 카드론 한도 다 채우면 제2금융으로, 거기서도 리미트까지 채우면 제3금융으로.” --- p.315
남자 “영춘아.”
영춘 “네.”
남자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는 거야. 그리고 누구나 상처를 주지. 나는 노라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어. 난 죽었고, 그걸로 된 거야. 축구로 따지자면, 전반에 한 골을 넣은 팀이나, 후반에 한 골을 넣은 팀이나, 같아. 일대일이지. 언제나 일대일이야. 알겠니? --- p.367
하용 “손을 꼭 잡고 하늘을 날았어요. 저 멀리 하롱베이가 보였어요. 거기 우리 배가 있었죠. 작고 낡은 베트남 배. 침대도 있고, 애들 장난감도 있었어요. 그 사람은 돛을 펴고 배를 한참이나 쳐다봤어요. 새 출발이 감격스러웠나 봐. 우린 대나무 침대에 누웠어요. 얼굴만 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요. 그 사람이 나한테 속삭였어요. ‘내 하롱베이는 당신이야.’”
--- 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