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곳에서는 네 쌍의 커플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합니다. 첫 순서가 바로 우리 집.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후 제 언니와 에이치 씨가 저 계단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듯합니다. ---p.17
웨딩페어가 있던 날 나를 포함한 상담 고객들은 가짜 신랑신부가 행진할 때 머리 위로 꽃잎으로 뿌렸다. 플라워 샤워라나 뭐라나. ……실제 예식에서는 손님들이 나간 후 다음 식을 위해 서둘러 흩어진 꽃잎을 쓸어 담고 치우겠지? 쓰레받기 위로 켜켜이 쌓이는 꽃잎들. 모래와 먼지에 섞여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꽃잎들. 쳇, 어차피 그렇게 끝날 것을. ---p.23
“손톱 색깔을…… 에메랄드그린색으로 하기로 했어요.” 호텔 아르마이티 웨딩홀입니다, 하자마자 처음 들린 말이 그것이었다. “아, 예에.” 놀랄 새도 없이 공기 빠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드레스는 됐어요. 손톱 색으로 커버해볼 테니까 에메랄드 룸, 그냥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이 일을 해온 이래 최대의 난국이 될 거라는 느낌이 또렷이 들었다. 그럼에도 대꾸는 꼬박꼬박 해야 했다. “아, 감사합니다. 오사키 고객님.” ---p.42
대기실에 들어가니 신부 의상을 갖춰 입은 저의 쌍둥이 언니가 거울 앞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언니가 우리를 돌아봅니다. 언니 옆에서 머리를 만져주고 있던 미용실 직원이 슬쩍 벽 으로 자리를 비켜줍니다. 마리카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엄마보다 저를 먼저. 꼴깍, 숨을 삼킵니다. ……“예뻐.” 그 말에 마리카의 붉은 입술이 살며시 벌어집니다. “고마워.” 그러고는 저를 보며 우아하게 웃습니다. ---p.52
“진짜 대단한 건 이거야. 이것만큼은 그 의상실에 없어서 수공예점에 특별히 부탁해 제작했거든.” 그러면서 빨갛고 큰 리본이 가운데 붙은 머리띠를 꺼냈다. “어머나, 세상에.” 경악한 듯 뒤로 한 발 물러서는 엄마의 입엔 사과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것 같았다. ---p.69
내겐 차라리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다. 헤어질 일은 상상도 못 하고 서로 꼭 붙어 있기로 한 커플. 늘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나와는 달랐다. 기와코하고라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반드시 소중히 대해줘야지. 결혼해도 좋을 것 같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95
그것이 키스, 라는 것을 저는 조금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전율했습니다. 나는 키스를 경험했다. 그것도 열네 살에. 어른이 된 후에 누가 첫 키스는 언제 했느냐고 물으면 당당히 이 나이를, 이 느낌을 이야기할 수가 있다. 남은 평생 어느 누구하고도 키스를 못 한다 해도 괜찮아. ---p.99
일단 반지 얘길 꺼내 입을 막았지만 여자란 말 한마디로 혼자 천리 길 달려 나가는 생물 아닌가. “응응” 하면서 대충 끄덕였다. 그날은 아스카의 차를 타고 술 마시러 갔다가 우리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시답잖게 대답했다가 차 안 분위기가 싸해지고 아스카가 삐쳐서 그대로 집으로 가버리면 오천 엔에 달하는 택시비를 물어야 할 판이었다. 생각만 해도 도리질 칠 일 아닌가. 언제든 빠져나갈 틈이 있는 한, 연애 분위기를 최고치로 끌어올려주고 싶었다. “아스카와 결혼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럴 리도 없고, 그러지도 않겠지만…….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