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 도착했을 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가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답니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결혼을 약속받고 미궁에서 탈출할 방법이라며 실타래를 건네주었지요. 제물로 끌려가는 일행의 선두에 선 테세우스는 실을 풀면서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리고서,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는 말이 나왔지요. 그 뜻은 ‘어떤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나 실마리’를 의미합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낙소스 섬에 들렀을 때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 와버렸답니다.
이윽고 테세우스는 제물로 바쳐졌던 젊은이들을 데리고 아테네의 항구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 돌아올 경우 흰 돛을 달겠다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지요. 언덕 위에서 검은 돛을 단 배를 본 아이게우스, 그는 아들이 죽은 줄만 알고 절망하여 절벽 아래 바다에 몸을 던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이 바다를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 해(Aegean Sea)’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 제1장 신화, 「사랑의 배신으로 얼룩진 인간 영웅들」 중에서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칸딘스키는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불타는 듯한 밝은 색채들이 칸딘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뒤집어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칸딘스키는 그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그림이란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구나!”
칸딘스키는 이 새로운 신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실 재현을 거부하고, 점 · 선 · 면과 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그는 그 근거를 음악에서 찾았습니다. 음악이 현실의 소리를 재현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의 영혼을 울린다는 점에 착안해, 미술도 현실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아도 색채와 점 · 선 · 면 · 구도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영혼에 호소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칸딘스키는 먼저 회화를 성립시키는 3가지 원천을 자연에서 받는 직접적인 ‘인상’, 무의식적이고 우발적인 ‘즉흥’,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자리 잡는 마음속의 구도인 ‘구성’으로 보고, 이를 인상(Impression),즉흥(Improvisation),구성(Composition)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 제2장 현대 회화, 「표현주의와 추상주의」 중에서
삼부회는 성직자 제1신분, 귀족 제2신분, 평민 제3신분이 각각 한 표씩을 행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두 특권층과 평민층이라는 2대 1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평민 대표들은 반발했고, 평민 대표를 두 배로 늘리고 대표자들이 모두 1표씩을 던져 표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평민 대표를 두 배로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요.
하지만 각 신분마다 한 표씩이라는 원칙이 고수되었고, 결국 말장난일 뿐 2대 1의 상황에는 변함이 없었답니다. 이에 분개한 평민 대표들은 국민의회(The National Assembly)를 구성하고, 궁정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헌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무력 진압을 준비하고, 시민의 지지를 받던 재무장관 네케르(Jacques Necker)를 면직시켜버립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전제정치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국민군을 만들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각 지방 도시 시민과 농민들도 너나없이 함께 들고일어났습니다. 이미 혁명은 시작되었고, 그 타오르는 불길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입니다.
--- 제3장 서양 유럽사, 「새로운 정치 체계를 갖춘 민주국가들의 탄생」 중에서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무겁거나 가벼운 물체의 절대적 성질을 부정하며, ‘낙하 속도는 물체의 무게와 저항하는 매질의 차이가 아니라, 물체의 밀도와 저항하는 매체의 밀도의 차이에 비례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여기서 저항하는 매체를 밀도가 0인 상태까지 몰고 가 ‘진공을 전제로 할 경우, 모든 물체는 낙하 속도가 같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저항이 없다면 물체의 무게나 밀도도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는 주장이지요. 바로 이를 실제 실험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의 낙하실험’입니다.
갈릴레이의 역학은 천문학적 경험들과 결합되자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동설이 설득력을 갖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왜 하늘로 던진 물체가 지구가 움직이는데도 그 자리에 떨어지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갈릴레이는 여기에 대해 지상의 모든 물체가 지구의 원운동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는 케플러를 직접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타원운동이 아닌 원운동을 믿었답니다. 어쨌든 그는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든 앞으로 나아가든 지구가 회전하는 것만큼 똑같이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 제4장 철학과 과학, 「무너져 내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중에서
“위험하지 않게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더 나은 내일을 살 것인가?”
아마 이 물음에는 개인적으로 좋고 싫음은 있을지언정,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란 이렇게 현 상태의 안정을 추구하는 쪽의 견해냐, 좀 더 변화된 사회를 추구하는 쪽의 견해냐 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일반화해볼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정치 · 사회적인 문제냐, 경제적인 문제냐에 따라서, 또는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보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됩니다. 우리가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우익과 좌익, 우파와 좌파라는 말도 비슷하면서도 시대와 나라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며 사용되고 있는 용어랍니다.
먼저 우익과 좌익은 프랑스혁명 직후 국민의회 등에서 우측에는 왕당파같이 기득권층이, 좌측에는 제3계급 대표들이 앉으면서 유래되었습니다. 이후 초기 근대 국가에서는 왕정을 지키거나 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우파’ 또는 ‘보수’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자유를 내세우며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요구하는 이들은 ‘좌파’ 또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부르주아 중심의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형성되고, 여성과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이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시민계급의 주축이자 변화에 앞장섰던 부르주아는 이제 ‘우익 보수’로 불리게 되었으며,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와 투표권, 사회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던 이들이 ‘좌익 진보’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 제5장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보수와 진보가 펼치는 사회의 다양한 청사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