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를 북돋우는 이 세상의 신비들을 인지하는 것이 내적 능력인데, 그녀가 매우 운이 좋을 때는 그런 능력을 빌려 곧장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의 글쓰기를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지만, 그에 접근하는 행운은 아무 예고도 없이 왔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펜을 집어들고 종이 위를 움직이는 펜에 손을 내맡길 것이다. 그녀는 펜을 들었다가 자기는 그저 자기 자신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실내복을 입은 채 펜을 잡고 있는, 약간의 능력만 갖추었을 뿐 두려움이 많고 확신이 없는, 그래서 어디서 시작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여자라고.
그녀는 펜을 집어든다. --- p.54
그저께 밤에 그는 애리조나 주 사막에 차를 세워놓고 자신의 영혼의 현존이, 아니면 그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그 무엇인가가 느껴질 때까지 쏟아져내리는 별들 아래 가만히 서 있었다. 한때는 어린아이였다가 이제는(불과 한순간의 일인 것 같다) 별들 아래 사막의 고요 속에 서 있는, 그의 내면에 지속되고 있는 영구한 정수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 p.193
그녀는 공포(공포라는 어휘가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라고 생각한다)에 질렸다. 아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그녀는 누워보려고 몇 분 동안 애를 썼다. 책을 읽어보려고도 노력했지만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와 케이크, 그리고 키티와 나눈 키스로 인해 힘이 다 소진된 듯 공허한 기분을 느끼면서 두 손으로 책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차양을 내리고 침대 머리맡의 등을 켜고 책을 읽으려 애쓰면서 침대에 누웠을 때, 그녀는 이게 사람들이 미친다고 말하는 그것인가 하고 궁금해졌다. 이런 식으로 상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발광하고 있는 누군가(그녀 같은 여자)를 생각할 때면 그녀는 비명과 울부짖음, 환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미치는 것에도 다른 길이, 훨씬 더 조용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각이 무디고 절망적인데다 기운마저 없는 나머지, 슬픔같이 강렬한 감정조차 위안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방식 말이다. --- p.196
한 번 또 한 번, 클래리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녀는 의외로 냉철하지만(그녀는 자신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와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그 방으로부터 멀리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이미 벌어진 무엇인가를 그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그 현장은 어떤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녀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무엇인가가, 목소리 같기도 하지만 정작 목소리는 아닌 무엇인가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와 거의 구분이 안 되는 가슴속 깊은 곳의 경험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리처드가 지상에서 5층 높이의 창턱에 앉아 있는 것을 봤어. --- p.271
로라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읽는다. 여기 한순간이 있고, 저기 한순간이 흘러가네,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한 페이지가 막 넘어가려 한다.
그녀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아들을 향해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이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녀석은 타버린 초 끄트머리를 핥고 있다. 그 아이는 또 다른 소망을 품는다. --- p.285
문간에 서서 버지니아는 그 옛날 바닷가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듯, 끊임없이 변하는 달빛 그림자를 지켜본다. 그래, 클래리사는 한 여인을 사랑했을 거야. 클래리사는 그 여자와 키스를 했을 거야, 딱 한 번만. 클래리사는 너무도 쓸쓸하게 사람들을 잃게 되겠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삶을, 런던을 너무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버지니아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래, 맞아, 육체는 강하되 정신이 나약한 누군가를. 천재 기질과 시심을 지녔고 아울러 세상의 수레바퀴에, 전쟁과 정권에, 의사들에 짓눌린 누군가를. 조금 더 어렵게 말하면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고, 또 나무들도 감각이 있는 존재이고 참새들도 그리스 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안다는 이유로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통하는 누군가를. 그래, 그런 누군가를 말이다. 클래리사, 정신이 멀쩡한 클래리사는 런던을 사랑하고 자기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어느 미치광이 시인은, 어느 몽상가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 pp.2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