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기관들끼리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골프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조화가 중요하다. 골프는 심리게임이다. 그러나 신체와 정신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골프의 심리적 요인에는 생물학적 측면, 인지적 측면, 정서적 측면, 사회적 측면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요인들도 독립적이지 않고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골프와 관련해서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계와 근육의 특성이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기능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생각과 감정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체적이고 인지적이며 정서적인 측면들은 그 작용이 환경이나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골프심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네 가지 측면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골프는 머리 나쁜 사람이 잘하기 힘든 운동이다. 지적인 요소가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골프이며,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과 지형 및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공간 감각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택시운전사들의 경우 뇌에 있는 해마의 크기가 크다. 해마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영역인데, 공간을 파악하며 해야 하는 운동을 쥐에게 일정 기간 동안 시키면 해마 부피가 커진다. 따라서 공간 감각이 필요한 운동을 아동에게 시키면 기억과 학습 능력이 좋아진다. 축구선수 박지성과 같이 공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해마의 기능이 좋고 머리도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운동선수를 공부에서 열외시키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는 운동선수들이 학교성적도 좋다.
골프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에 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샷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샷의 구질이 드로인지 페이드인지를 알고 있어야 경기를 관리할 수 있듯이, 골프를 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심리적인 통제가 가능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골프와 관련된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감정을 파악하는 자기 관찰(self-monitoring)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자기통제를 가능하게 할 뿐더러, 스스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자동적으로 증가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감소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관찰은 행동치료 기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자기 관찰은 자신을 믿고 신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라운딩을 하면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좋은 골퍼가 될 수 있다. 바로 자신을 믿고 신뢰할 때 좋은 샷이 나오기 때문이다. 골프에서의 두려움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두려움이다. 미스 샷이 나왔을 때도 자기를 비난하지 말아야 다시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수동적인 플레이를 하는 골퍼는 경기가 잘 풀릴 때는 문제가 없지만 미스 샷이 나오기라도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여 완전히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가 플레이를 지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능동적인 플레이를 하는 골퍼는 미스 샷이 나와도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에 오래 두지 않는다. 미스 샷과 그에 따른 감정을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그냥 잊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잊으려고 한 결과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만이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을 수 있는 것도 인생과 골프에서 중요한 능력이다. 실력 있는 골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최상의 샷을 하는 데에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낙천적인 태도는 잠재되어 있는 골퍼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한다.
구력도 꽤 되고 열심히 노력하여 연습장에서는 샷이 좋은데도 싱글 플레이어가 되지 못하고 보기 플레이에 머물고 있다면 심리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생각할 때 샷이 자신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데 싱글 플레이를 하는 골퍼들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이유는 분명 심리적인 것에 있음이 확실하다. 이런 골퍼가 심리적인 부분에 수정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싱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골퍼에게 이 책의 내용이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 책에는 프로 골퍼에게 유익한 내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많은 내용이 아마추어 골퍼들을 위해 쓰였다. 프로 골퍼가 경기력 향상과 우승을 위해 사용해야 할 심리적 전략들의 원리가 이 ?에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적용 문제는 책으로보다 교육이나 개인적인 심리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프로 골퍼에게 심리적 요인이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투어든 간에 시드를 배정받은 프로 골퍼라면 실력으로는 우승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적인 자질 및 능력을 발휘하거나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우승의 관건이다. 미국의 경우 우승을 많이 하여 잘 알려진 프로 골퍼 중에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골퍼가 많다.
이 책은 아마추어 골퍼를 위해 쓰였기 때문에 골프를 시작하려는 사람과 100타 이상을 기록하는 하이핸디캐퍼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골프 연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심리적 방법, 골프를 하면서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이완방법 등을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골프는 심리게임이면서 확률 조절 게임이기도 하다. 미스 샷의 확률을 줄이는 플레이를 하면 운도 따른다. 사실 운도 자신감에서 나오는 좋은 샷과 그런 샷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의 확률이다.
골프를 잘한다는 것은 선택을 얼마나 잘하느냐를 의미한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이나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선택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유에서 자녀가 성공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대신 결정해 주기보다 자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유,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듯 골프에서도 선택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적절한 선택을 한 후 그것을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스코어를 결정한다.
왜 골퍼들은 멋지게 샷을 한 것보다 미스 샷을 한 것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일까? 이런 사실을 지지하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그것은 자이가닉 효과라는 것으로 자신이 잘해낸 일보다는 자신이 잘해내지 못한 일을 훨씬 더 잘 기억한다는 개념이다. 이런 사실은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 레빈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베를린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그는 카페의 한 웨이터가 계산하기 전까지는 여러 사람이 주문한 것들을 종이에 적지 않고도 정말 잘 기억하지만 일단 계산을 하고 나면 그것을 잘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힌트를 얻어 그의 제자 자이가닉이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세상에 알린 것이 바로 자이가닉 효과다. 따라서 라운딩을 끝내고 나면 잘했던 플레이나 운이 잘 따라 주었던 플레이보다 자신이 실수하였던 플레이가 더 잘 기억나는 것이 골퍼에게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면 이런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관리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다.
스코어와 관련하여 목표가 없는 골프는 재미도 없으며 실력의 개선도 없다. 나도 골프를 시작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 목표가 없었다. 그냥 라운딩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경치를 즐기면서 파나 몇 개 하면 기분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골프를 하니 실력은 당연히 향상되지 않았고, 골프의 참맛을 느끼지도 못했다. 사람은 성취동기가 있어야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성취동기가 높은 골퍼는 스코어와 같은 결과보다는 성취과정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골퍼가 자신감도 있고 미래 지향적이어서 골프 실력도 향상되는 것이다. 골프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사람은 미스 샷을 하여 트러블 상황에 봉착했을 때 쉽게 포기한다. 목표가 있을 때만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으면 신중하게 플레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결과가 좋지 않아 자신이 골프에 자질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목표가 있는 골퍼가 트러블 상황에서 당황하여 포기하지 않는 것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이기 때문이다.
골프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끊임없이 꿈과 목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이 골프가 있어 중년기는 물론이고 노년기에서의 목표와 꿈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목표를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역시 문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성취했을 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조정하지 못하고 목표에 끌려가며 그것과 투쟁한다.
심리학자 레어드(Laird)는 재미있는 내용의 글과 분노를 유발하는 신문기사를 대학생들에게 읽게 하였고, 시간이 지난 후 학생들에게 웃는 표정과 찡그린 표정을 짓게 해서 전에 읽었던 내용들을 회상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은 웃는 표정을 하였을 때 재미 있는 내용을, 화를 내는 표정을 지었을 때는 분노를 유발하는 기사의 내용을 더 많이 기억해 냈다. 골프는 민감한 운동이고 매우 세밀한 운동 ?보를 무의식적으로 기억해 내야 하기 때문에 기분의 영향을 더 잘 받는다. 누구라도 기분 좋게 골프 라운딩을 하고 싶어 하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연습할 필요가 없다.
만약 며칠 동안 실제로 연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용히 상상으로 스윙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볼을 맞히는 것을 상상하고, 그때 자신이 실제로 스윙을 하여 손에 전달되어 오는 느낌까지 상상하며, 볼이 멋지게 날아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라. 실제 연습의 중간중간에 이렇게 상상으로 골프 스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의외로 계속 실제로 연습하는 것보다 심상 훈련이 스윙을 정련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게다가 실제로 연습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을 때는 이런 상상으로 하는 연습이 효율적으로 연습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골프가 주는 즐거움을 어디 하나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마는 골프의 재미는 심리학자 칙센미하이가 제안한‘플로(flow: 몰입의 즐거움)’의 개념에 가장 가깝다. 이런 즐거움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마치 숨쉬듯 자연스럽게 일을 진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재미의 속성에 동기화, 주의 집중, 몰입, 정교화, 추론, 즐거움, 기쁨, 만족감 등을 포함시키는데, 골프는 이런 속성들을 거의 모두 지니고 있다. 사람을 4~5시간 동안 완전 몰입하게 하여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골프 외에 얼마나 더 있을까?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골프처럼 대다수의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라운딩 후에 자신이 플레이했던 것 중 잘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머릿속에서 재생해 보며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면 실력의 향상도 없다. 골프의 고수들은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플레이의 종류를 계속해서 늘려 온 이들이다. 만약 라운딩하면서 실수한 것들이 그냥 마음속에서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두고 그것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골프를 한다는 것이 괴로울 뿐더러 결코 실력도 향상될 수 없다.
자신의 좋은 플레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서 동반 플레이어들을 내 편으로 만들면 나의 플레이가 좋아진다. 타인이 나의 플레이가 잘될 것이라고 믿거나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좋은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고 한다.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