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과장도 없이 말하지만, 나는 유치원 시절,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몰랐던 그 시절부터 이미 페미니스트였다. 내 기억에, 내가 처음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반감을 갖게 된 건 엄마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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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에서는 엄마가 좀 더 독자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내 의견은 전혀 중요치 않다. 엄마와 달리 나는 페미니즘 세대에 속하고, 엄마가 가질 수 없었던 다양한 기회들을 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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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두 다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고, 두 귀 사이에 존재한다. 즉 나의 페미니즘은 철학적 태도이자 남성만이 가진 권위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정의에 대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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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늘 타이르곤 했다. “뭐든 소란 피우지 말고 품위 있게 해야 하는 법이란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게 소란 피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들이밀 수 없는 것이다.
--- p.49
나처럼 자부심이 꽉 찬 여자에게 늙어가는 건 힘든 일이다. 마음만은 여전히 매력이 넘쳐흐르는 여성인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말이다.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게 필요한데, 사실 내 나이에는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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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무도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들지 않는다면 그건 나라는 사람이 아무런 보잘 것도 없는 사람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기겁할 일이다.
--- p.112
난 아직도 강아지들과 바닥에서 뒹굴기도 하고,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나가기도 하고,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하고, 깔깔거리면서 섹스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젊다고 느끼며 산다. 그렇지만 신중한 자세로 함부로 내 능력을 시험하려 드는 짓은 하지 않으며, 묵묵히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잃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 p.114
여성이 원하는 건 대충 이런 것이다. 안전하게 살기, 인격체로 존중받기, 평화롭게 살기,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사람들과 연결되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기.
--- p.151
‘남성’의 또 다른 이름인 ‘서글픈 이 세상’을 운영해나가는데 이젠 여성도 참여할 시간이 도래했다. 더러 권력을 쥔 여성들을 보면 남성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만이 권력을 공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과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른 여성의 숫자가 충분해진다면 저울추를 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문명 쪽으로 기울일 수 있다.
--- p.238
우리는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 우리를 갈라놓는 각종 구분에서 비롯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포괄적이고 평등한 문명을 원한다. 우리는 평화와 공감, 품위, 진리, 연민이 충만한 친근한 세상을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우리 착한 마녀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여성이 함께 완성해낼 수 있는 계획이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