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는 넓으면 좋을까, 좁으면 좋을까? 조시가야에 살 때 1평이 채 되지 않는 벽다락을 서재로 삼은 적이 있다. 정신 사납지 않아 좋았지만 참고서 놓아둘 곳이 없어 곤란했다. 지금 서재는 4평인데도 조금 좁은 느낌이다.
이제껏 본 서재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공간은 야나기타 구니오 선생의 서재다. 얼추 30평 크기에 구석구석 책장이 놓였는데, 도서관 서고처럼 방 가운데도 책장이 자리했고 한구석에 업무용 책상이 있었다. 이러면 한밤중에 옆방까지 참고서를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니 편하겠다. 서재와 서고를 따로 만들면 꽤 합리적일 것 같지만, 추운 겨울밤이면 그만 귀찮아져서 꼼짝도 하기 싫은 법이다. 설렁설렁 일을 하면 아무래도 변변찮은 결과가 나온다.
---「서재 한담_노무라 고도」중에서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 쓰다 만 초고, 내팽개쳐진 펜과 담배 파이프. 소파에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날 반나절 낮잠 꿈을 머금은 솜털 이불. 더러운 카펫 위에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양말. 찢어진 서화 병풍. 이 모든 것이 어지러이 널브러진 실내 광경. 나라는 한낱 중년 서생의 생활이 여윈 손끝으로 켠 불빛을 받아 더없이 쓸쓸하고 고요하게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회한, 근심, 번민, 희망, 망상…… 온갖 감정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이 침통한 한밤중 감상을 달갑게 받아들인다. 기쁘기 그지없다. 홀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 이 세상에서 서재만큼 반가운 곳은 없다.
---「한밤 귀갓길_나가이 가후」중에서
나는 늘 생각한다. 책상 밑에 날 놀리려고 엉뚱한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난쟁이 마법사가 한 명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무튼 끊임없이 물건이 없어진다. 방금까지 옆에 놓였던 빨간 색연필, 책갈피에 끼워둔 메모지, 일에 필요한 명함, 파이프, 가위, 답장해야 할 우편물, 교정할 원고 등등. 뭐가 됐든 책상 위에서 자꾸만 사라져버린다. 그때마다 “어이” 하며 가족을 불러 집이 떠나가라 시끌벅적하게 찾아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는다. 자칫 나중에 잡서 더미 사이에서 뜬금없이 나오기라도 하면 참으로 멋쩍기 그지없다. 멋쩍음을 숨긴 채 지나가는 말로 “요전번에 찾았던 거, 있었어”라고 알릴 때마다 “거, 보세요” 하고 가족들은 한껏 우쭐거린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족의 긍지를 높이고, 드물게 내가 기죽는 사건이니 오히려 좋은 일이려나.
---「서재 망상_요시카와 에이지」중에서
괴로움이니 고매니 순결이니 순수니, 이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써라. 만담이든 짤막한 이야기든 상관없다. 쓰지 않는 까닭은 어김없이 나태해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깜냥 이상 일도 못 하고, 자기 깜냥 이하 일도 못 한다. 노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찌푸린 얼굴로 책상 앞에 앉지만 막상 아무것도 안 한다. 턱을 괴고 멍하니 있을 뿐이다. 별로 심오한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게으름뱅이의 공상만큼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것은 없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지만, 게으름뱅이의 공상도 졸졸 끝없이 흐르며 달려간다.
뭘 생각하고 있는가. 이 남자는, 지금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기차 여행은 지루하다. 비행기가 좋다. 엄청나게 흔들리려나?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울 수 있나? 골프 바지를 입고 포도를 먹으며 비행기에 타고 있으면 멋져 보이겠지? 근데 포도는 씨를 뱉어야 하는 걸까, 씨까지 통째 삼켜야 하는 걸까? 포도를 바르게 먹는 법을 알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이 이상해서 통 종잡을 수 없다.
---「나태라는 가루타_다자이 오사무」중에서
어렸을 때, 아버지 책상이 놓인 2평짜리 방에 한쪽 벽을 다 차지하는 2단 선반이 달려 있었다. 위는 책장으로 썼는데 『문예구락부』, 『신소설』, 『태양』 같은 잡지 몇 년 치가 잔뜩 뒤섞여 나뒹굴었다. 게다가 커튼도 없어서 늘 먼지투성이였다.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는 선반에 올라가 닥치는 대로 잡지를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글자는 모르니 오로지 그림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신소설』이었던가, 한 잡지 속표지에 아무리 봐도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그림 한 장이 실려 있었다. 넓은 연못에 붉은 석양이 내리비친다. 건너편 검은 숲과 연못 수면과 거기 뜬 보트 한 척이 비스듬히 비추는 붉은 햇빛에 섬뜩하게 휩싸인 가운데 누군가 서 있다. 해쓱한 얼굴 반쪽은 선명히 보이는데 그 외는 흐릿하다. 가슴 언저리에 활활 불타오르는 듯 색칠한 볼록한 뭔가가 일그러진 채다. 다섯 살 여자아이 눈에는 왠지 그게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고릴라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됐다. 몇 번씩이나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책꽂이_미야모토 유리코」중에서
일요일만 한가하던 나는 이곳저곳에서 소개받아 온종일 여러 집을 방문했다. 꽤 고된 일이었다. 본디 장서가라는 사람은 도쿄 한복판에 거의 살지 않는다. 대체로 교통이 불편한 변두리에 집이 있다. 전철 없는 시절에 혼고 고이시카와나 혼조 후카가와 부근까지 찾아가려면 왕복 시간만 해도 꽤 잡아먹었고, 그만큼 가장 중요한 독서 시간이 줄어들어 몹시 난감했다.
무엇보다 낯선 집에 주저앉아 천천히 독서하자니 민망했다. 장서가라고 해서 꼭 넓은 집에 살지 않는 법. 때론 1평짜리 현관에 앉아, 때론 멋들어진 객실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는데, 변변히 차 한 잔 내주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차와 과자를 내놓더니 덤으로 장어덮밥까지 차려주는 집이 있다. 대우는 천차만별, 푸대접은 사소한 불평으로 끝나지만 너무나 후한 대접은 미안한 마음에 자주 가기가 꺼려진다. 홀대도 난처하고 환대도 난처하니, 아무래도 대응이 쉽지 않다.
---「독서 잡감_오카모토 기도」중에서
어째서 삼사 년 전에 만년필로 바꾸자고 갑자기 맘을 먹었더라. 이유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일단 편리함이라는 실용적인 동기에 지배당했을 게 틀림없다. 만년필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당시 마루젠에서 펠리컨이라 불리는 제품을 두 자루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 지금까지 쓰고 있긴 한데, 불행히도 펠리컨에 대한 내 감상은 매우 좋지 않다.
펠리컨은 원하지 않는데도 원고지 위에 잉크를 쓸데없이 똑똑 떨어뜨리거나 꼭 먹색이 나와줘야 함에도 막무가내로 거절하며 주인을 학대했다. 하기야 주인 역시 펠리컨을 푸대접했을지도. 무정한 나는 잉크가 다 떨어지면 책상 위에 놓인 아무 잉크나 닥치는 대로 집어 들어 펠리컨 배 속에 부었다. 또 블루블랙은 딱 질색이라 일부러 세피아색 잉크를 사서 펠리컨 입을 거침없이 벌려 먹였다. 경험이 없어 펠리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전혀 몰랐다. 실제로 펠리컨이 아무리 물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제껏 그를 씻겨줄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나와 만년필_나쓰메 소세키」중에서
축소도 사생첩에 쓰는 종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되도록 질이 좋은 종이를 골라 손수 철했다. 요즘은 얄따랗고 반투명한 유산지에 그린다. 양피지를 닮은 유산지라면 앞뒤 양면을 다 쓸 수 있어 꽃이나 나무를 사생하기에 편리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연필로 축소도 연습을 하지만, 나는 익숙한 탓인지 붓과 먹이 그리기 쉽다. 습관처럼 저절로 몸에 배었지 싶다. 내게 그림은 무조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붓으로 그려야 하는 까닭에 축도하거나 스케치할 때도 항상 붓을 쓴다. 붓 선도 그만큼 좋아지기에 연필로 그리는 편보다 연습도 된다. 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붓글씨에 서툰 것과 같다.
---「사생첩_우에무라 쇼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