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리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힘든 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혹은 대신 아파야 마땅한 게 아니었다. 아프고 힘들어야만 하는, 고생하고 상처받아야만 하는 청춘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하여 그것이 맞는 삶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여행이 피워낸 사랑은 사실 여러 가지 양념을 쳐 가려버린 상한 생선조림인지도 모른다. 이미 상한 생선에 각종 야채와 양념을 사정없이 때려 넣고 졸여서 그 풍취를 숨겨버린 것일지도. 다합에서 매일 점심으로 먹던 천 원짜리 생선튀김도 그랬다. 상했는지 싱싱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튀겨져 나왔으니 신선도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쓸 사항이 아니었다. 맛이 좋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나에게 여행은 패배할 확률이 높은 도전이었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가난하고 능력 없는 쌍문동 캥거루족에겐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내가 믿을 사람이라곤 칠칠치 못한 나뿐이었으나, 내가 이토록 나와 친했던 적이 없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당신의 발아래 놓인 수많은 어제는 눈부신 기쁨과 눅눅한 슬픔의 반복이었겠죠. 뿌리 깊은 비통에 휘청거리던 그날도 당신이 모르던 새에 거름이 되어 어여쁜 꽃이 되었잖아요. 꽃에 가시 좀 돋으면 어때요. 그 가시는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떨칠 수 없던 외로움과 열등감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이제 다 크고 예쁘게 성장할 일만 남아있어요. 매일 밤 기도해도 나아지는 게 없겠지만, 오늘은 흘러 다시 어제가 될 거고, 또 당신의 발밑에 움을 틔울 거예요. 그러면 내일이 오고 다시 버티며 살아가겠죠. 우리는 모두 여행 중이잖아요.
넘어지고 굴러서 생긴 당신의 상처는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고, 이대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수백 번 말해줄게요. 지금 우리는 새벽 3시 57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곧 해가 뜰 거예요. 내 것임에도 내 멋대로 할 수 없고,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내느라 고생했어요. 수고했어요. 당신, 힘내요.
당신과 숱한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나는 당신이 궁금해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알고 싶은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일지도 몰라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내 여행은 멀리서 보면 꽃가루가 날리고 폭죽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짠할 만큼 비극이다. 나는 내가 여행을 통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믿었다. 나는 그대로 나였다. 바보 같고 한심하고 엉성하고 어설픈.
“이것도 주세요!” 진우는 가슴팍에 품고 있던 사탕과 초콜릿을 와르르 쏟아냈다. 얼추 세 보아도 수십 개였다. 나는 열차 안에서 우리가 함께 먹을 키뚬부아(튀긴 술빵)를 사는 중이었다. 기차가 지나가자 멀리서부터 세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진우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가방에서 미리 사둔 사탕과 초콜릿을 꺼냈다.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를 위해 등 뒤에서 꽃다발을 꺼내놓는 것 같았다.
예쁜 것을 보면 더욱 네 생각이 났다. 내 마음이 유별한 게 아님을 알면서 감추지 못한 나는 낭만이 아니라 주책이겠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나는 너에게 진심을 전해야 했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진우는 손톱달을 좋아했다. 나는 손톱달이 뜰 때면 진우가 어디에 있든 달려가 손톱달이 떴다며 하늘을 보게 했다.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만날 수 있는 얄따란 달을 보며 때마다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급하게 찾는 것. 이것을 사랑 외에 달리 부를 수 있을까.
저마다 꽃이 피는 시간대가 다르다. 누군가는 두 번씩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일찌감치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놀라울 만큼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뿐. 나는 커다랗지 않고 빠르지 않아도 천천히, 작은 꽃이 피는 중일 것이라 나를 자위하며 여전히 준비 중인 푸릇한 잎을 닦아낸다. 앞으로도 내 노력을 배신하는 일쯤은 여러 차례 생기겠지만 그 또한 지나갈 것이고, 별일이야 있겠냐는 믿음마저 나를 배신하진 않을 테니까. 넘어지면 잠깐만 뒤처지고, 짧게 창피해하고 얼른 일어나면 되니까. 상처가 나도 후시딘 살 능력쯤은 있으니까.
비참한 실패까지 나눠가질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든든하고 감사한데도, 타인의 작은 실패를 찾아낸 후 웃어야만 속이 편하니 나란 사람은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가, 하는 생각 따위를 하느라 하루를 또 보내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도 내겐 지옥이 됩니다. 아주 흔한 단어들의 나열이 문장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울리듯, 작은 진창들이 모여 나를 묵묵히 살게 합니다. 당연히 과거에는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빛을 잃은 추억은 힘이 되어 온갖 나쁜 생각을 쓸어내어 줍니다.
실패가 잦은 내 삶에서 아빠의 문장은 잘도 숨어있다가 적절한 순간마다 튀어나와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나는 정문으로 들어왔잖아. 비록 숱한 꼴등을 경험했어도, 나는 늘 정문으로 다녔잖아.
여행에서 미화되지 않는 고생은 없다. 시간의 간격만 다를 뿐, 해가 지면 혹은 해가 지나면 아프고 더럽고 지친 것들은 모두 미화된다. 얼마나 많은 도시를 뒤로하고, 얼마나 많은 해가 져야 나는 여행과 같은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을까. 고된 것을 감수하고, 힘든 것을 버텨낼 원천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이 여행이 끝나면 과연 나는 일상에 무너지지 않을 힘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나는 공간부랑자였다. 여기저기, 공간을 옮겨 다니며 떠돌고 있다. 그러다 덜컥 현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썰물처럼 밀려드는 그 얄궂은 허무함과 두려움은 지금 여행하며 느끼는 감흥과 설렘보다 더욱 커지곤 했다. 그럴 때 한 번씩 누가 누웠다 갔는지 모를 꿉꿉하고 좁은 침대에 누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는가 곱씹는다. 내 인생은 목표를 세우고 그대로 달려간 적이 별로 없다. 파워 P인 사람이라 어차피 목표나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그 와중에도 과정에서 자꾸만 새로운 것을 건드려보고 멈춰서 다른 것을 어른다. 나름대로 꼼꼼하게 계획했던 여행루트가 처참히 어그러졌을 때도 무던히, 이거 참 내 여행 같다며 대수롭지 않았다.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잘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세상을 비교와 경쟁의 시각에서 보는 못난 나라도, 여행지에선 비교할 건덕지를 찾을 수가 없다. 누가 물건을 더 싸게 샀나, 누가 더 맛있는 식당을 찾았나로 경쟁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백 명의 사람이 같은 곳을 가고, 같은 것을 보아도 느끼고 받아들이고 즐기는 데는 백 가지의 방법이 각자 있다니. 얼마나 쿨하고 아름다운지. 삶과 가장 가까운 위로 중, 이만한 위로가 있을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