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자 : (막이 오르면 장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무대로 나온다.) 장님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려서 병을 앓아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장님이 있었답니다. 비록 앞은 못 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바로 그날……. (무대 뒤로 사라진다.)
1장 [장님의 꿈 속]
장님이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근처 나무 그늘에서 도깨비가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새와 동물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장님 : (두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걷는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거기 아무도 없소? 여기가 어딘지 누가 좀 알려 주시오. (몇 걸음 앞으로 걷다가 자고 있던 도깨비의 발에 걸려 넘어진다.)
도깨비 : (깜짝 놀라 깨어나서 방망이를 손에 들고 소리 지른다.) 아니, 어떤 녀석이 감히 날 깨운 거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넘어져 있는 장님을 발견한다.) 바로 너로구나!
장님 : 누구시오?
도깨비 : 나는 이 숲을 지키는 도깨비님이시다. 아무도 나한테 함부로 덤비지 못하지. 그런데 네가 감히 나의 꿀잠을 방해해!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도깨비 굴로 끌고 가서 도깨비 밥이 되게 해 주마.
장님 :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는 그저 앞이 보이지 않아서…….
--- pp.11-12 「눈 뜬 장님」 중에서
1장 [지후네 집]
지후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식탁 한가운데에 커다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놓여 있다.
지후 : (수저들 쪽으로 손을 뻗으며) 우와, 이게 다 뭐야?
아빠 : (지후의 손을 가로막는다.) 어허, 만지면 안 돼요.
할아버지 : 지후야, 그건 말이다, 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 : (할아버지의 입을 막으며) 아, 이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 : 퉤, 퉤! 아니, 왜 말을 막아요?
엄마 : (웃으며) 아버님도 참…….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그 말씀 다 하시다간 저녁도 못 먹겠어요.
아빠 : 아버지, 제가 지후한테 잘 설명할게요.
지후 :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인 거죠?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웃는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탈을 머리에 쓰고 무대 가운데로 나온다. 아빠는 흰 수염에 화려한 왕관을 쓴 왕의 모습을 하고 커다란 의자에 앉는다. 무대 배경이 지후네 집에서 나비와 새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꽃밭으로 바뀐다.
--- pp.173-174 「지후네 김수저」 중에서
3장 [화가가 사는 언덕]
화가 : (한 손에는 팔레트를,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화가들이 쓰는 동그란 베레모를 쓰고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그림을 그리는 몸짓을 한다.) 세상은 모두 나의 캔버스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하지.
소녀 : (몸이 하늘을 나는 듯한 행동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어어어……, 내 몸이 날았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여긴 어디지? 나무와 꽃들과 하늘의 색이 너무나 아름다워.
화가 : (언덕 아래에 갑자기 나타난 소녀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앗. 저 쪼그마한 소녀는 누구?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소녀 :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여긴 정말 아름다워.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걸까?
화가 : (언덕 아래의 소녀를 보고 잘난 척하며) 누구긴? 바로 나야 나. 나란 말이야.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가 바로 나야 나. 나야 나라고.
소녀 : (파란 하늘을 쳐다보더니) 저 파란 하늘은 마치 물감을 뿌려 놓은 거 같아.
화가 :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다가) 저 파란 하늘? 하늘이 어때서? 하늘이 왜? 저 파란 하늘이 어때서?
소녀 : 저렇게 하늘이 파란 이유는 뭘까?
화가 : 뭐긴 뭐야. 내가 실수로 파란 물감 통을 쏟아 버려서 저렇게 파랗게 된 거야. 저건 내가 실수로 물감 통을 쏟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소녀 : 저 파란 하늘이 제일 예뻐.
화가 : 뭐라고? 내가 실수로 물감 통을 쏟아서 그렇게 된 건데 제일 예쁘다고? 아이쿠야.
소녀 : (졸린 듯한 표정을 한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네……. (나무 아래 잠이 든다.)
--- pp.215-216 「저 언덕 너머에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