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첨단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 즉 철새의 비행 역학을 밝혀내기 위해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 차원에서 연구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흙먼지 날리는 위험한 사하라 사막 남쪽 주변부에서 한쪽 눈으로는 그들이 연구하는 새들을 주시하면서 다른 한쪽 눈은 자신들을 죽이거나 납치할지도 모를 이슬람 반군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현장의 조류학자들과도 대화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총을 쏘거나 덫을 놓아 새를 사냥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수백만 마리의 명금류 새들을 불법적으로 포획, 살육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비정규전이 은밀하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 p.40
2006년, 한반도의 남한은 새만금에 길이가 약 33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방조제를 완성했다. 그 방조제는 한때 약 38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면적의 비옥한 습지를 에워쌌던 두 개의 주요 강어귀가 조수와 만나는 것을 막았다. 그 습지는 그곳에서 조개류를 캐어 생계를 유지하는 2만 명의 어민들과 수십만 마리의 도요물떼새 철새들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갯벌이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서식하는 붉은어깨도요의 총 개체 수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마리 이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숫자가 해마다 새만금을 찾아왔던 붉은어깨도요의 개체 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p.70
철새들은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체내 장기들을 일부러 배양하기도 하고, 반대로 도태시키기도 한다. 또한 운동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체액으로 비행 능력을 강화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병적인 비만증과 당뇨병, 그리고 심장병이 곧 닥칠 것 같은 징후들이 눈에 띄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 어떤 철새는 며칠이나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를 반으로 나누어 반쪽씩 번갈아 가며 잠을 자기도 한다. 둘 다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수면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 p.106
가장 울창한 숲을 자랑했던 지역들도 도로와 전력선, 중소도시 건설, 개벌작업과 각종 개발 사업으로 조각조각 쪼개졌고, 산림지대는 좀먹은 담요처럼 너덜너덜한 누더기 꼴이 되었다. 그렇게 조각난 작은 숲들에는 산림 인접 구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미국너구리, 스컹크, 주머니쥐, 집고양이, 까마귀, 검정뱀black snake, 푸른어치blue jay, 긴꼬리검은찌르레기사촌 같은 이른바 주변부 포식자들이 넘쳐났다.
--- pp.159~160
철새들은 본디 아무리 작은 도심의 밤하늘이라도 지나치게 환하게 밝히는 그런 조명 불빛의 장막이 아닌, 반짝이는 별들이 비추는 희미한 빛을 따라 밤하늘을 비행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밤하늘을 나는 철새는 무려 3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빛나는 불빛도 볼 수 있다. 또한 새는 그 불빛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최소한 미국 땅의 70퍼센트, 그리고 전 세계 육지의 40퍼센트의 상공에서 이제 더 이상 은하수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인간들이 만들어 낸 불빛이 지구의 하늘을 오염시켰다. 조류학자들 은 수 세대를 지나는 동안 인공조명 불빛이 새들의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 p.224
만일 먹이가 더 부족해지거나, 서식 환경이 조금 더 나빠지거나, 날씨가 약간 더 건조해져서 솔새가 먹이를 찾는 데 아주 조금 더 힘들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그 작은 먹이를 평균 3초가 아니라, 4초에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별로 차이가 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럴 경우, 그 새가 하루 동안 섭취할 수 있는 먹이의 25퍼센트가 줄어드는 셈이다. 엄청난 먹이 감소다.
--- p.281
기후 변화는 철새 이동과 관련된 하나하나를 모두 수정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자연 순환의 일정을 가리키는 달력을 찢어 버리면서, 새들이 이동 경로를 따라 필요한 먹이를 발견하기 위한 여행 시간표를 바꾸고, 번식기 같은 중요한 기간들을 점점 더 단축시키는 방식으로 계절을 앞당기고 있다. 기후 변화는 날씨를 바꾸고 있다. 폭풍은 더욱 강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륙풍도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는 점점 더 강해지고, 또 다른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동 중 중요한 순간에 순풍을 타야 하는 많은 철새에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 p.312
그들은 황무지말똥가리들이 아르헨티나에 올 때쯤이면 그곳 농부들이 해바라기와 콩 같은 줄뿌림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방목지를 갈아엎기 때문에, 그에 따른 메뚜기의 급증을 막기 위해 모노크로토포스monocrotophos라는 유기인산화합물인 강력한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한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몸집이 큰 곤충들을 잡아먹는 황무지말똥가리들이 그것 때문에 무차별 살상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신속히 그 증거를 수집해서 과학적 검사를 받기로 하고 그 파국적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했는데, 죽은 황무지말똥가리 입 안에 독극물에 중독된 메뚜기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p.359
바다 철새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때는 바람과 폭풍우 앞에 속수무책인 망망대해를 날 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양은 그들에게 거의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종에게 가장 큰 위험들은 육지에서 그들을 기다린다. 인간, 그리고 쥐와 생쥐, 개와 고양이, 염소와 양처럼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이 그들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먼 곳이 육지에는 이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떠난 뒤에도, 이 인간의 공생체들은 뒤에 남아 그곳을 사정없이 황폐화시킨다. 수천 년 동안 인간 세상과 멀리 떨어져 고립된 덕분에 바닷새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었던 섬이 이제는 거꾸로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타고난 자기 방위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고립된 섬의 해안에서 포식자를 만나면 피할 곳이 없다. 〈티글랙스호〉에 함께 탄 생물학자들 가운데 한 명은 키스카섬에서 쥐와 새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쥐가 살아 있는 새의 뇌를 어떻게 파먹을 수 있는지 끔찍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 p.428
1996년에 사망한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한 식사에 회색머리멧새 두 마리가 요리되어 나왔는데, 그는 이후 모든 식사를 거부하고 8일 뒤에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요리 전문가인 고 안소니 부르댕Anthony Bourdain은 이 멧새 요리를 〈희귀하고 금지된 식사의 최고봉〉이라고 부르며, 많은 동료 식도락가와 함께한 불법적인 만찬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했다. 「씹을 때마다 얇은 뼈와 지방, 고기, 껍질, 그리고 내장들이 다져지면서 액즙이 흘러나오며 다양하고 기묘한 오래된 풍미가 입안 가득 느껴집니다. 무화과 열매와 아르마냑 브랜디 맛이,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입안을 찔러서 나는 피의 짠맛이 약간 스며든 진한 고기맛과 어우러진 것 같았죠.」이 회색머리멧새는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1999년 이래로 프랑스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법은 대개 무시되었는데, 프랑스 남서쪽 대서양 해안에 있는 랑드Landes에서는 특히 심했다. 랑드는 회색머리멧새 요리를 광신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다.
--- p.443
비둘기조롱이는 다른 대부분의 맹금류와 달리, 번식기만 빼고 매우 사교적인 새다. 그들은 엄청나게 큰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데, 대개 작은황조롱이lesser kestrel들과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의 월동지인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공동으로 조성해 놓은 보금자리에 밤마다 수백, 수천 마리가 모여 있다. 그러나 도양저수지에 모이는 숫자는 세상 어느 곳하고도 달랐다. 나가족도 오래전부터 비둘기조롱이가 모이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 p.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