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아키하바라가 이렇게나 붐비는구나.
---「첫 문장」중에서
“10시 정각. 아키하바라 쪽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적당히 하지. 그런 농담 축에도 못 끼는 소리를.”
“그런데 형사님. 10만 엔은 정말 안 빌려주실 건가요?”
“쉽게 말하지 마. 이쪽도 박봉인 몸이야.”
“사실 전 한평생 월급 같은 건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스즈키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죽은 자나 마찬가지죠.”
--- p.19
“아무튼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요. 형사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떤 형태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 p.60
폭발이 앞으로 두 번 남았다는 말은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다음은 언제 어디서 폭발할까. 그리고 그다음은.
새삼 실감한다. 시한폭탄이라는 건 정말 골치 아픈 존재다. 한 번 ‘있다’고 생각하면 그 뒤로는 마지막에 ‘없다’고 증명될 때까지 공포에 떨어야 한다. 어디선가 때를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에도 초침이 째깍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스즈키를 상대해야 한다. 그의 말을 요구하고 있다.
--- p.138
그때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이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당혹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떨어진 건 퍼즐 조각이다. 지금까지 채워 온 머릿속 스즈키의 퍼즐. 이제 채 300조각도 남지 않은 퍼즐의 어딘가에서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대체 바라는 게 뭡니까?”
“말할 수 없어요. 말해 버리면 손에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서비스로 가르쳐 드리자면 그건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p.221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아뇨, 있습니다. 정확히 제가 그래요. 아니,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저 같은 사람, 찾아보면 꽤 많을걸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 길가에 널린 돌멩이 같은, 그런 존재 말입니다. 좋은 신발을 신고 걷는 사람들은 그런 돌멩이를 걷어차도 아무렇지 않겠죠? 아프기는커녕 간지럽지도 않겠죠? 그래 봐야 돌멩이니까요. 얼굴 없는 인간입니다. 놋페라보(얼굴에 눈과 코, 입이 없는 일본의 요괴-옮긴이)예요. 그런 건 인간이라 할 수 없죠. 상대해 봐야 득 될 게 없고 손해만 볼 뿐입니다. 그러니 그냥 지나치는 거예요. 기요미야 형사님도 그러시죠? 길가에 있는 존재들은 그냥 지나쳐 오셨잖아요.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으시죠?”
--- pp.292~293
“전 말이죠, 형사님. 거짓말을 정말 싫어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줄곧 거짓말에 속아 왔거든요. 모두가 저를 속이고 속임수를 가르쳐 주었죠. 거짓말쟁이들이 꼭 거짓말쟁이가 아닌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런 우스꽝스러운 세상의 섭리를 견디지 못해 거리 위로 나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그런데 전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런 거짓말쟁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해요. 그러면서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죠. 속임수 위에 또 다른 속임수를 덧씌우며.”
“그래서 무차별 테러도 오케이다? 그리고 그런 걸 즐기는 나는 정직한 인간이다? 푸하, 스즈키 씨, 당신, 생각보다 더 시시한 인간이었잖아.”
“맞습니다. 시시하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쓰레기봉투 속 쓰레기라고요. 길가에 널린 돌멩이라고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는 놋페라보라고요.”
--- p.352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 그런 인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쓰레기, 늘 피해자 행세를 하는 추남 추녀, 물과 평화와 기초 생계 급여는 공짜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거드름을 피우는 비평가, 냉소주의자, 케이크 사진을 일일이 찍어 대는 한가한 인간, 사치스러운 교주와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데 여념이 없는 신자들, 환경 운동가, 채식주의자, 억지 가사밖에 쓸 줄 모르는 래퍼, 영화나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 제 자식밖에 모르는 팔불출 부모, 그런 부모가 다 해 줄 거라고 믿는 마마보이, 마마걸, 인간보다 개,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녀석들. 그들 모두를 평등하게 죽일 것입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p.362
쓰레기 같군. 내면에서 똬리를 튼 두 가지 색이 점점 탁해진다. 서로 다른 색감의 두 물감이 검은색 같은 파란색, 파란색 같은 검은색이 된다. 진짜 파란색은 어느 쪽일까. 진짜 검은색은…….
--- p.435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한 명씩은 죄수가 있고
신음하는 서글픔
--- p.478
“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고 싶다고 바라신 적은? 따분한 관습이나 미사여구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쾌락을 추구해 보고 싶었던 적 없으세요? 재미있고 유쾌하게, 내 방식대로.”
형사님.
“저는, 악인가요?”
--- p.522